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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상상 Jul 27. 2024

감당할 시련밖에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누구에게나 심연을 걷는 듯 괴로운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당시의 나도 그랬다. 끝이 안 보이는 것 같던 우울과 찌들어있는 육체의 피곤함으로 늘 무기력했다. 학교에 출근해서 일을 하는 것과 밤에 병원에서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 외에는 타인을 만나는 것도 꺼려졌다. 그럼에도 그런 삶이나마 지탱하게 해 주던 것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은 집이어야 하지만 그때는 집에 오래 머무를수록 짙고 무거운 우울감이 몰려왔다. 흐르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멈출 수가 없었다.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도 잦았다. 마침 그맘때 우울증과 불면에 햇볕과 운동이 좋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래서 찾은 돌파구가 집 앞 초등학교에 딸려 있는 피트니스 센터였다. 한쪽 벽면이 모두 거울인 벽 앞에 각종 운동기구가 놓여있는 곳이었다. 낯설었다. 난생처음 시작한 운동이 잘될 리 없었다. 작은 아령으로 몇 번 팔운동을 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운동 초보가 혼자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체육관에 상주하고 있던 트레이너가 자주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도와주려는 마음이 고마웠다.


무엇보다도 트레드밀 위에서 뛰는 순간만큼은 잡생각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거울 벽의 맞은편은 통유리로, 트레드밀에서 뛸 때 1층에 있는 수영장이 내려다보이는 구조였다. 일렁이는 물결과 그 속에서 치열하게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격렬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광경을 보면서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까지 뛸 때면, 역설적으로 조금은 삶의 의지가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전방을 향해 계속 헤엄쳐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자, 가자, 나도 가야지.'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하루는 눈이 내리던 추운 밤이었다. 밤에는 간병을 하며 병원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지내곤 하던 그때에 예고 없이 병문안을 와준 사람이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랬는지 별말 없이 함께 있어주다가 헤어질 때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고 갔다. 열어보니 붕어빵 모양을 한 과자를 비롯해 몇 가지 간식들이 들어있었다. 말이 과하지 않은 그 사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박한 선물이 주는 감동이 있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남편이 된 그는 아마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항암치료를 하며 육체적 고통에 힘겨워하던 엄마였지만 그런 순간조차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느껴졌다. 샤워나 용변을 도와주려고 하면 거부하고 어떻게든 스스로 해보려는 노력을 할 때가 그랬다. 가끔씩은 내 손에 몸을 맡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존심 강했던 엄마다움을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니구나 싶어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탁구장 주부 회원 중 한 분은 엄마를 위해 호박죽을 손수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거의 한 달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대용량 용기에 담아서 직접 가져다주셨던 기억이 난다. 교회 집사님이라 술을 전혀 드시지 않는데도 맥주를 좋아하는 엄마가 가는 술자리를 한사코 따라가 말동무가 되어주시곤 하던 분이었다. 명랑함과 강인함, 활력이 넘치던 시절의 엄마를 함께 기억하고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마음 아픈 일을 겪는 동안에도 감사할만한 일들이 참 많았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도움의 손길을 건네준 사람들, 함께 아파해주고 위로를 건넨 사람들도 많았다. 그때는 내 문제에 급급해 잘 보이지 않던 호의와 감사가 이제야 더 선명하게 느껴지니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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