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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상상 Aug 03. 2024

마지막 날

죽음 이후의 세계를 경험해 본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승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도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직전까지 갔던 경험은 희미하게나마 떠오른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였다. 고모들을 따라 계곡으로 물놀이를 간 날이었다. 고모들과 고모부들은 텐트를 치느라 한창 바빴던 것으로 기억한다. 숨이 막히는 불볕더위에 계곡물이 몸에 닿는 서늘한 느낌은 잠시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청량하고 산뜻했다. 그 차가움에 이끌려 점점 더 먼 곳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갑자기 땅이 훅 꺼지는 곳으로 발을 헛디뎠다. 순식간에 머리까지 물에 잠겼다. 공포 속에서 간신히 숨을 참고 버둥대는데, 버둥거릴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다는 걸 느끼고는 순간적으로 그냥 몸에 힘을 빼버렸다. 죽음은 이렇게 갑자기 올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몸에 힘을 빼고 기다리는 순간 발바닥에 계곡 밑바닥 돌들이 밟혔다. 나는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그 돌들을 밟고 다시 수위가 얕은 물로 걸어 올라왔다. 잔뜩 겁에 질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다시 삶을 선물 받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엄마의 마지막 순간은 새벽이었다.

선잠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중요한 무엇인가를 상실한 느낌. 

직관으로 이미 그날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뿌연 안개 같던 새벽을 뚫고 전화 소리가 울렸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와 함께 택시를 타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보호자 동의를 받은 뒤 의료진들이 엄마 몸 위에 올라타고 심장충격기를 강하게 눌렀다.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이미 소용이 없는 행동이라는 걸 직감했다. 심전도 그래프가 평평해졌다. 의사가 날짜와 시간을 말하고 사망선고를 내렸다. 모든 일들이 너무 빠르게, 비현실적으로 흘러갔다. 병원 밖으로 나온 아버지가 끊었다던 담배를 사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한숨 같아 보였다. 숨쉬기가 힘들어 그렇게라도 숨을 내뱉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계곡물에 빠졌다가 살아난 것 같은 기적은 두 번 일어나지 않았다. 아프고 난 후 가끔 심술을 부리기도,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하기도 하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의 눈빛이 가끔 힘 없이 먼 곳을 응시할 때, 마치 잡을 수 없는 세계로 가고 있는 듯해 엄마의 손을 하염없이 만져보곤 했다. 그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게 찾아왔던 기적이 엄마한테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익숙한 그 얼굴을. 


병환과 죽음이라는 파도를 홀로 온몸으로 맞던 엄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가늠할 수 없는 외로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이 죽음이라지만 엄마의 그날은 왜 그리도 빠르게 찾아온 것인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 엄마에게, 다시 만나면 묻고 싶은 것들이 많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그곳에서는 부디 엄마가 평안하기를 바랄 뿐이다. 



햇살은 우릴 위해 내리고
바람도 서롤 감싸게 했죠
우리 웃음 속에 계절은 오고 또 갔죠
바람에 흔들리는 머릿결
내게 불어오는 그대 향기
예쁜 두 눈도 웃음소리도
모두 다 내 것이었죠
이런 사랑 이런 행복 쉽다 했었죠
이런 웃음 이런 축복 내게 쉽게 올 리 없죠
눈물조차 울음조차 닦지 못한 나
정말로 울면 내가 그댈 보내준 것 같아서

그대 떠나가는 그 순간도
나를 걱정했었나요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내 맘 앞에서
그대 나를 떠나간다고 해도
난 그댈 보낸 적 없죠
여전히 그댄 나를 살게 하는 이유일 테니


                                      성시경 '희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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