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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전쟁사

남북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by 데이터분석가

ㅇ독서 플랫폼: Yes24구입

별점: 4.5/5.0

한줄평: 전쟁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미국의 역사

발간일: 2025년 6월 4일

읽은 시기: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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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평: 끝나지 않는 러우 전쟁, 재발한 이란-이스라엘 전쟁과 이란 핵시설 폭격, 핵보유국인 인도-파키스탄 충돌, 새롭게 등장한 캄보디아-태국 전쟁 등 올해만 새롭게 발발한 무장 충돌이 여럿이다. 현재 미국 내 정치적 분열은 미국 남북전쟁 직전인 1850년대와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오고(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피터 터친), 국제 정세는 세계대전 직전의 1930년대와 유사하다는 말을 한다. 독립전쟁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신생 독립국이었던 미국이 영미전쟁을 거쳐 인디언 전쟁, 남북전쟁, 스페인 전쟁, 멕시코 전쟁을 거쳐 양차 대전 이후에는 세계 패권국으로 등극하게 되는데, 당대의 역학 관계와 전황을 뒤바꾼 신기술은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기 좋은 책이다.


1. 남북 전쟁 직전의 1850년대와 2020년대 미국의 유사성: 미국 독립선언(1776년) 이후 85년이 지난 1861년에는 미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내전이 발발했다. 피터 터친에 따르면 1850년대 미국과 2020년대의 미국은 인상적인 유사성이 많았는데, 1) 경제 생산량에서 노동자 임금으로 지불된 액수 비중이 절반으로 줄었고, 2) 사회적 불만의 징후를 나타내는 도시 폭동 발생 건수가 급증했고, (호시절이었던 1820-1825년에는 도시 폭동이 한 차례 뿐이었으나 남북전쟁 5년 전인 1855-1860년 사이에는 38건의 폭동이 발생했다) 3) 반이민을 표방한 모르쇠당(Know Nothing Party)같은 포퓰리즘 정당이 부상했다.


2. 남북전쟁 당시의 시대상.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라는 영화의 배경은 바로 이 남북전쟁 직전인 1858년을 배경으로 하는데, 흑인을 노예로 부리던 당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플랜테이션 경제에 의존하던 남부인에게는 경제 시스템과 지역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고, 공업화가 진행되어 노예가 아닌 노동자가 필요했던 북부인들에게는 건국 이념에 명시된 평등과 연방의 존속을 건 투쟁이었다.


3.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미국의 뒤늦은 참전: 1914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로 시작됐다.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동맹국)와 프랑스·러시아·영국(연합국)이 참전했고,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처음에는 중립 선언을 했었다. 그러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었던 유보트 사건, 독일이 멕시코를 끌어들여 미국을 공격하게 하면 관심이 분산될 것이라 생각해 끌어들이려한 것이 알려지며(치머만 전보) 1917년 봄에는 미국도 참전하게 된다.


4. 1차 세계대전의 신기술: 여전히 깃발 등 초보적인 수단의 통신이 쓰여졌으나 지상전에서는 전화가 널리 사용됐고 전보가 이름을 떨쳤다. 기차, 택시 함대, 항공기 등 신형 운송수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수 많은 자동차, 기계 회사들이 군수품을 대량 생산하는 군수 기업으로 전환했는데, 대표적으로 포드는 자체적으로 군용차를 제작해 모델 T를 유럽 전장에 2만대 가까이 수출했다.


군용차, 기동 무기체계 뿐 아니라 전투기, 함선 등 해양 무기체계도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 가능한 산업화 시기에 발맞춰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인데, 이를 우연이라고 보는 학자는 거의 없다. 대량 생산된 무기를 대규모로 소비할 수 있는 방식이 전쟁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세계대전 발발의 보이지 않는 요인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5. 전후 호황과 로어링 투엔티(Roaring 20's):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의 미국은 전후 호황을 구가했다. 이 시절의 대표 신기술로 라디오 통신 기술과 집집마다 한 대씩 보급하게된 포드 자동차를 꼽게 되는데, 사실은 전시 과학기술 투자의 확대와 무관하지 않다.


6. 1919년, 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베르사유 조약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게되는 흐름: 패전국인 독일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게됐는데 그 결과 독일은 1920년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대공황과 혼란 속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민족주의적 복수심을 내세워 집권하게 된다. 바이마르 공화국(나치 집권 전의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현상은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실리는 내용인데, 경제학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지정학적 현상에 가까운 사례인 것 같다.


7. 1938년, 독일의 과학자들은 양성자 가속으로 우라늄 원자핵에 충돌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5킬로 정도의 U235를 추출해 모으면 TNT 수천톤의 위력을 가진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로 과학계는 흥분했다. 이 시기 핵분열의 결정적인 연구 성과는 독일 과학자 주도로 이뤄졌으며, 히틀러가 핵무기를 먼저 완성하면 인류가 파멸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오펜하이머라는 영화로 당시의 시대상이 많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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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939년 2차 세계대전의 발발: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공개적으로 파기하며 군비를 증강하고 오스트리아 병합, 체코슬로바키아 해체, 폴란드 침공을 단행했다. 독일은 이후 빠르게 서유럽을 점령하며 1940년 프랑스까지 함락시켰고, 동부에서는 1941년 소련을 침공하며 전선을 확대했다. 2차 세계대전은 1차 때보다 사망자 숫자가 6배 더 많아 8,000만 명 가까이 사망했으며, 사상자가 군인들로 제한됐던 그 전과 달리 전체 사망자의 3/4가 민간인이었다.


9. 2차 세계대전과 기술혁신: 역사상 그 어떤 전쟁보다 많은 기술 혁신이 이뤄졌는데 공중전, 해전, 상륙전, 잠수함 및 대잠 작전이 이뤄졌고 암호해독기와 핵무기까지 동원됐다. 전차와 전투기 등이 전쟁 중 크게 개량됐으며 많은 새로운 시스템과 아이디어가 전쟁 중 개발됐다. 적어도 이 시기의 혁신 기술이란 민간에서 생산성 혁신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었다.


10.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미국의 참전.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자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전 지구적 규모가 됐다. 1942~1943년부터 연합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북아프리카 전선, 미드웨이 해전 등에서 결정적 반격에 성공했고,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서유럽 해방을 시작하였다. 결국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하고, 같은 해 8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자 일본도 항복하면서 끝나게 된다.


11. 2차 세계대전과 암호해독: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잘 알려진 일화인데, 수학자 앨런 튜링은 애니그마 암호 해독을 위해 기계적 장치 ‘봄브(Bombe)’를 개발했다. 튜링은 블레츨리 파크에서 팀을 이끌며 자동화된 암호 해독기를 개발해 독일군의 전략 통신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암호 해독은 ‘울트라 프로젝트’로 불리며 대서양 전투, 노르망디 상륙 등 핵심 작전에 기여했고, 결과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2년 이상 앞당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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