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할 일을 하는 것
하루는 밤 9시에 순찰을 타러 갔다.
야간 순찰을 대화 몇번 해보지 않은 선임이랑 탔다.
순찰을 타며 여러 대화를 하던 중 선임은 나에게 물었다.
“나 몇 월 군번인지 알아?”
이 말은 자기가 언제 전역하고 자신의 계급이 얼마나 높은 지를 알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건 모른다 하는 게 맞던 나는 당연히 모른다고 얘기했다.
숨 가쁘게 순찰을 마치고 복귀 차량을 기다렸다. 밤은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땅바닥에 같이 앉아서 쉬는 가운데 선임은 담배를 피우며 말을 걸었다.
“너 선임들 몇 월 군번인지 다 외워, 이번 주 일요일까지”
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70명 정도 사람들의 군번을 외우게 하는 것은 분명한 부조리였다. 부조리는 바꿔야 한다는 나의 신념은 군대에서도 여전했다. 그렇지만 지혜롭게 말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알았다.
“저는 머리가 안 좋아서 다 못 외울 것 같습니다 “
말도 안 되는 핑계였지만 하기 싫다는 말을 돌려서 내 나름 했다.
“외워… 알았지….?”
“하……”
나는 고민 끝에 한숨을 깊게 쉬었다. 말대꾸를 한 것과 한숨을 쉰 것 이 두 가지 행실은 바로 중대에서 소문이 났고 내리 갈굼은 시작됐다. 맞선임, 맞맞선임들은 나를 찾아왔고, 동기들도 눈치를 줬다
처음에는 누가 와도 강제로 외우는 것을 저항했지만, 저항할수록 여러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선임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계속 얘기했다.
내리 갈굼을 처음 당해본 나는 당황했다.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많이 당황했다.
곧은 가지는 꺾이기 쉬운 것처럼,
결국 나는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외우기로 했다.
나는 내가 안 꺾일 줄 알았다.
그 누구에게도 저항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건 나의 교만이자 착각이었다.
이후 마음을 낮추고, 더 낮추고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나의 부족함은 여실히 드러났다.
여러 사건 사고를 겪는 상황 가운데,
내가 붙잡는 것은 내가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슬픔과 좌절 가운데 있는다고 나아질 것은 없었다.
이등병이고 일이 많기에 하루 종일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1분 1분을 모아야만 책 한 페이지를 넘기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운동을 해야만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야 꿈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에게 편안히 누워서, 유튜브를 즐기며, 릴스를 보는 시간은 조금도 허용되지 않는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조금도 나아질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핸드폰을 내기 10분 전 나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의 목소리의 첫마디에
내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들 잘 지내지? “
대답하기 어려운 이 질문에 나는 두 눈에서 눈물은 끝없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생활관에 다른 선임들도 있어 소리를 내면서 울 수도 없어 최대한 작게, 안 우는 것처럼 대답했다.
“네”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아들.. 목소리가 안 좋은 것 같아”
”여기서는 작게 말해야 돼서 그래요 “
엄마랑 아주 작게 통화하며,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런 가운데 나는 복근 운동을 하고 있었다.
힘들지만 해야할 일을 해야했고
눈물을 흘러내렸지만 소리 내지 말고 울어야 했고
잘 지내지는 않지만 잘 지내고 싶었다.
“그래 아들 힘내~”
엄마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내 마음을 울렸고,
가슴 깊이 퍼져나갔고,
새 힘을 주었다.
힘들고 좌절되는 상황이었지만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고,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고,
슬픔 가운데 주눅 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눈물을 흘리더라도, 끝없이 좌절되더라도,
꿈을 향해 하루하루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힘겹지만 하나님을 부르며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