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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사실은 청설모입니다만

뉴욕에는 쥐가 많습니다. 어두운 곳에는 찍찍쥐가 많고 밝은 곳에는 다람쥐가 많습니다. 영화관에서 팝콘통을 발치에 내려놓는 건 찍찍쥐랑 같이 나눠먹겠다는 의사표시라나 뭐라나. 할튼 찍찍쥐는 별로 알고 싶지 않고 다람쥐 이야기를 할 겁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는 다람쥐가 정말 많습니다. 이 동물인데요. 아시죠? 이거 사실은 청설모입니다. 다람쥐 하고는 다르죠.

앉아서 먹어도 안 잡아가는데 굳이 힘든 자세로 먹음

청설모인데 굳이 다람쥐라고 하는 이유는 곳곳에 "Please do not feed squirrel"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쟤를 스쿼럴이라고 부르더라고요. 학교에서 다람쥐 = 스쿼럴이라고 배웠으니까 '다람쥐에 먹이를 주지 말라'라고 이해할 겁니다. 집 앞에 청설모가 많다는 것보다는 다람쥐가 많다는 게 좀 더 부럽게 느껴지잖아요.


할튼 아파트 단지에 다람쥐가 정말 많이 살았거든요. 얘들이 나무 위에 난 구멍에 사는데요, 단지 내 산책로로 걸어서 지나가면 땅콩을 달라고 나와요. 도대체 얼마나 대를 이어 얻어먹었는지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행인들 주변으로 쪼쪼쪼쪼 돌아다닙니다.

흑(?)설모

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오는 그 껍질 있는 땅콩을 통째로 던져주면 얼른 두 손으로 집어 들고 이빨로 껍질을 척척 뜯어서 먹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개체수가 너무 불어나니까 땅콩 좀 주지 말라고 계속 안내를 하는데 그래도 다들 줍니다. 그거 까서 먹는 모습을 보면 안 줄 수가 없어요.


집이 나무 위에 있으니까 주로 풀밭 정원에서 돌아다니고 거기서 노는데요, 가끔 길을 잘못 든 다람쥐는 어린이 놀이터 구역으로 들어왔다가 애들 놀고 있는 다리 사이로 쑝 지나가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럼 그거 잡겠다고 한바탕 난리가 나죠. 물론 아무도 잡을 수 없습니다만.

갈(?)설모

이 다람쥐가 육아 도움받을 손 없는 뉴욕에서 애들 키우는데 또 크게 한몫했죠. 저희 집이 아파트 4층이었는데요. 거실 창문 바로 앞에 엄청나게 커다란 삼나무 같은 게 떡하니 있거든요. 이 나무에서도 저희 집 창문이랑 정확히 같은 높이에 큰 구멍이 있는데 여기를 다람쥐가 집으로 삼은 거예요.

다람쥐 관람석 1열

낮에는 구멍 밖으로 나와서 볕도 쬐고 뭐 먹을 때는 창문 앞에 나 있는 가지 위로 올라와서 먹고 말이죠. 구경하다 보면 팁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현금은 안 받아서 땅콩이라도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집에서(오른쪽) 나와서 구경하기 좋은 곳(왼쪽)에서 먹음

얘네 집 안에 나뭇잎으로 바닥재가 깔려 있는데요, 비가 온 다음에는 그게 젖잖아요. 그러면 젖은 나뭇잎은 싹 걷어내고 어디서 새 나뭇잎을 물어다 열심히 도배장판(?)을 새로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장판이 아니라 이부자리인가요? 할튼.


2년 동안 관찰하다 보니 새끼를 낳고 세대가 바뀌는 모습도 보고요. 침입자 다람쥐랑 살벌하게 싸우는 모습도 봤습니다. 누가 이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똑같이 생겨서.

구멍이 눈으로 막히면 파냅니다

한 번은 아무 생각 없이 유모차 아래에 있는 그물망에 콩 봉투를 뒀는데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이 녀석들이 무단 침입해서 유모차 바닥을 뒤진 거예요. 땅콩 다 훔쳐가고 그 옆에 같이 뒀던 애들 줄 홈메이드 쿠키도 같이 털어갔더라고요. 


날이 추워지면 주춤했다가 봄 지나고 여름이 되면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나무 한 그루에 5마리씩 붙어있고 그래요. 아무래도 일단 쥐니까요. 번식이 엄청납니다. 동네 공원에 가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데 저희 아파트 단지에 유독 땅콩 공급책이 많아서 그런지 2년 동안 정말 푸짐하게 구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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