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
정확히 ’학생인권조례‘ 라는 조례가 탄생하기 이전과 이후의 교사의 역할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조례를 통해서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 체벌이 금지되고 선생님 단독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던 것이 바뀌어 학부모와 학생 교사가 함께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저 인권조례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본 선생님들의 모습은 교실 내 최고의 권력자이자 심판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해결자로서의 교사를 현재 이 시대에서는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는 데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해결자로서의 교사를 요구만 했지 그것을 위한 준비와 지원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야 그 지원을 해주려고 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조금은 늦은 감이 있었다.
솔직히 억울했다. 나는 교실 내 폭력에 항상 노출되어 왔다. 선생님으로부터 그리고 내 주변 친구들로부터. 그 모든 폭력의 노출을 견뎌왔다. 지금 내가 억울한 것은 내가 그 폭력을 휘두르지 못해서 억울한 것이 아니라 나는 왜 그 폭력 속에서 노출되어 왔는지 그것이 정말 억울했다. 그러한 억울함을 내가 교실 속에서 고독히 혼자 느끼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정민이가 학교를 못 가겠다고 해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 반 정민이 어머님의 연락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정민이가 아무 말도 안 한다고 했다. 김정민, 우리 반에서 가장 조용한 아이 중 한 명으로 심성도 착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왜 학교에 오지 않는지 처음에는 의아했다. 하지만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정민이가 혹시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했는지 혹은 내가 무서워서 오지 않으려고 한 것인지 그것이 걱정되었다.
”오늘 오후에 집으로 방문 한 번 하겠습니다.“
이 일을 교감 선생님에게 보고를 하고 정민이의 집으로 찾아갔다. 갈 때 교감 선생님은 혹여라도 아이가 선생님 때문에 혹은 어떤 큰 문제 때문에 안 오는 거면 즉각 본인을 불러달라고 말씀 하셨다. 요즘 시대에 조금만 잘못해도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니 나에게 신신당부를 하셨다. 나도 그것을 이미 알고 있어 웃으면서 잘 다녀오겠다고 답변을 했지만 그 아이 집을 찾아가는 동안 마음이 매우 답답했다. 내가 무언가를 정민에게 잘못을 했을까. 혹은 정민이가 너무 소심해서 괴롭힘 당하는 것을 말 못하고 학교를 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정민이의 집은 그렇게 못사는 집이 아니었다. 그래도 중산층 정도의 누구나 다 알만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정민의 집을 찾아가서 아파트 철문을 잡고 열었을 때 내 걱정과는 다르게 정민이가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우와! 선생님 우리 집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