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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희 May 09. 2024

멍든 아이는 멍을 잊지 못한다. 9화

정민이의 힘찬 말소리부터 들렸다. 교실에서는 들을 수 없는 밝고 명량한 목소리였다. 다행이라는 안도의 마음과 함께 왜 개학 전날에 학교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그것부터 궁금했고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을 듣기 전에 어머님의 말부터 들어야 했다. 정민이가 선생님을 많이 보고 싶어 했다고. 그 말을 들으니까 정민이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뭔가 마음에 신경 쓰였다. 그리고 나서 어머님의 말 한마디가 들렸다.

 

”이번 여름 방학 때, 애 아빠랑 이혼을 했어요...“

 

요즘은 담임 선생님이 되었다고 해도 학생의 가정 상황이나 부모의 직업이나 재력 등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상담이나 정보 동의가 필요하다. 이렇게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나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다. 정민이가 학교에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다름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엄마 아빠가 이혼 했다는 것을 알리기 싫어서였다. 정민이와 단 둘이 대화를 하고 싶었다.

 

”정민아, 내일 학교에서 개학 이벤트로 과자 파티랑 교실 피구 할 거야. 내일 꼭 와서 과자 먹고 피구하자.

 

정민이가 밝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이에게 본인의 문제를 아예 거론하지 않고 새로운 분위기로 환기하는 것으로도 마음의 문이 종종 열리곤 한다. 정민이가 스스로 수치라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굳이 할 필요는 없다. 부모님의 이혼을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나이 12살인 것이다.

 

정민이와 짧고 간단한 얘기를 하고 내일 보자는 약속을 했다. 어머님께서 감사하다고 거듭 말씀을 하셔서 나름 뿌듯하고 보람도 느꼈다. 신발을 신으면서 다시 정민이를 바라보고 싱긋 웃어주었다. 그렇게 다시 작아진 철문을 잡고 밖을 나서려는데 정민이가 크게 말했다.

 

“선생님이 제 담임 선생님이어서 너무 좋아요. 다음에 우리 집에 또 놀러오세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가볍게 문고리를 잡아 돌려 밖을 나섰다. 곧이어 학교로 복귀하려는데 나의 왼쪽 가슴이 저릿하면서 아팠다. 그 통증이 나의 오른쪽 가슴, 배, 허벅지를 타고 다시 나의 종아리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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