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뉴질랜드로 넘어가기 전, 필리핀 세부에 두 달을 머물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원인 모를 피부병으로 현지 병원을 찾았다. 오른쪽 얼굴의 감각이 둔해지며 딱딱하게 굳어갔고, 입술과 한쪽 귀는 점점 부풀어 올랐다. 그 면적은 점차 넓어져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병원에서는 환경이 바뀌어서 물이 다른 탓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석연치 않은 설명이었지만 약이라도 받아와야 했다.
약은 어느 정도의 진정 효과는 있었으나, 말끔히 낫게 해 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내 얼굴은 필리핀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나는 귀국한 후에도 여전히 반쪽 얼굴의 원인을 알지 못했지만, 어느 날 우연히 그 수수께끼를 풀게 되었다.
‘망고다!’ 반가운 마음에 집어든 추억의 과일. 세부의 동네 슈퍼에서 노란 망고 한 알, 시장에서 초록 망고 두 알. 망고가 담긴 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면서 숙소로 돌아오던 학원 길을 떠올렸다. 망고를 먹을 때면 납작한 하얀 심지가 드러날 때까지 갈비라도 뜯는 것처럼 집중했다.
추억에 젖어 망고를 먹고 난 다음 날 아침, 나의 입술은 몇 시간 물속에 푹 담갔다 꺼낸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이만큼을 살고도 이제야 알게 된 음식 알레르기라니. 수포로 가득 찬 거울 속 입술을 보며, 그 피부병이 망고 때문이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리고 몇 차례의 추가 테스트로 알게 된 것은 만지지만 않으면 알레르기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만질 수는 없어도 먹을 수는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무슨 시험이라도 통과한 것처럼 가뿐해진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