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 물어보니 유아는 2세에서 취학하기 전까지의 아동이라고 되어있다.
나는 그 시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유달리 늦었고, 체구는 작았지만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이상한 아기였다. 어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아양 떨고, 귀여운 척하는 건 질색이었다.
그렇게 건방진 꼬맹이는 여섯 살이 되었고,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명덕유치원 개나리반.
9시 30분이면 홍선생님과 김 선생님은 등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느라 항상 바빴다.
별생각 없는, 아직은 어눌한 발음의 코찔찔이들은 잠이 덜 깬 얼굴로 교실에 들어왔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아이는 노랑머리에 항상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다.
왜소하고 순하디 순한 노랑머리 친구는 방긋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
그럴 때마다 나는 인사 대신 그 친구의 멜빵을 힘껏 잡아당겨서 툭 놔버렸다.
나보다 작고 순해서 만만했던 거 같다.
가을볕이 뜨겁다.
옆집 야옹이도 담벼락 그늘에 배를 깔고 누워있다.
깡총거리며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었다.
손님이 계셨다.
“아가! 어른께 인사드려야지!”
엄마가 수줍어하는 나를 억지로 끌어다 인사를 시켰다.
“니가 수진이구나?”
“귀엽고 이쁘다! 우리 준서랑 친하다며? 사이좋게 지내렴!”
“준서 엄마 셔.”
나는 순간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늘도 노랑머리의 멜빵을 잡아당겼는데...’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준서 이야기를 하는 거 같았다.
나는 뾰로퉁하게 그림책을 보는 척하고 있다.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도 아빠의 껄껄대는 웃음소리만 들렸다.
다음날 엄마는 유치원에 나를 데려다주면서 “준서가 유치원 가기 무섭다고 울었대! 친구 괴롭히면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가신다!”
나는 지레 겁을 먹고 길에서 “으앙!”대성통곡을 했다.
그날부터 준서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가끔 준서와 눈이 마주쳤지만 깜짝 놀라 못 본 척했다.
그렇게 어정쩡한 채로 지내다 나는 일곱 살 반으로 올라갔고, 준서는 이사를 갔다.
시간은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솜털 뽀송했던 아이는 새내기 여대생으로 훌쩍 자랐다.
2호선.
늘상의 습관대로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다.
잠실역에서 내렸다.
“혹시... 수진이 맞지?”
키 크고 잘생긴 남자가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누구... 세요?”
“명덕 유치원..나.. 준서야!”
잠시 생각했다.‘준서가 누구더라?’
아! 기억났다. 코찔찔이들 중 노랑머리.
“아! 반갑다!”
나보다 한참 작았던 준서는 보통의 남자들보다 훨씬 키가 컸고, 허우대도 멀쩡했다.
어릴 때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아봤는지 궁금했다.
준서의 사촌이 나와 같은 여고를 졸업했고, 졸업사진을 봤다는 말에 짜증이 올라왔다.
최고로 못생겼을 때의 사진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생각하니 부화가 치밀었다.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양말만 벗어던져놓고 거실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꼬인 심사에 미간이 찌그러졌다. ‘개가 저렇게 멀쩡했었나?’
그 후로 30여 년이 지났다.
우연히 준서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몇 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멜빵을 잡아당기고, 노랑머리가 신기하다며 놀렸을 때도 들지 않았던 죄책감이 느닷없이 올라왔다. 사람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꼬맹이들은 걱정도 없고, 먹여주는 밥만 먹고 놀고 잠만 자면 되니까 얼마나 편하겠냐고 생각하겠지만, 큰일 날 소리다.
꼬맹이는 꼬맹이 나름대로의 고민과 힘든 일이 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나 역시 항상 천둥벌거숭이는 아니었다.
김 선생님이 싫었고, 간혹이지만 친구들과의 갈등도 있었다.
그래도 개구쟁이였던 나의 유년기를 살뜰히 챙겨준 명덕 유치원은 가끔씩 생각이 난다.
오늘은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물러가기 아쉬운 여름이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려나보다.
따뜻한 허브차를 마시며 잿빛 구름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