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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제주가 아니야(5)

해녀의 부엌

by 철부지곰 Mar 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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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내가 가장 기대했던 ‘해녀의 밥상’ 순서가 됐다. 밥상은 종달리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과 제주의 신선한 채소가 가득한 뷔페였다. 고소한 톳 흑임자죽이 애피타이저로 나왔다. 남김없이 비우고 줄을 서서 톳밥, 돔베고기, 야채와 쌈장, 톳 계란말이, 상웨빵, 군소 무침, 뿔소라 꼬치와 회를 접시에 담았다.


  자리에 돌아오니 갈치조림과 전복 물회가 놓여있었다. 모두 신선하고 정갈했다. 맞은편에 앉은 낯선 손님을 신경 쓸 겨를 없이 음식의 맛에 집중하며 만찬을 즐겼다. 해녀는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제주의 상웨빵에 돔베고기를 얹어 먹어보라고 추천했다. 빵에 돼지수육이라니, 고개를 갸거렸다. 그런데 살코기와 비계가 적당히 섞인 흑돼지고기의 촉촉한 맛과 술빵같이 폭신하고 담백한 상웨빵이 잘 어울렸다.


  마지막 순서는 춘옥 할머니와 함께하는 인터뷰 시간이었다. 관객이 낸 질문지를 할머니께서 뽑아 답해주었다. 해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원정 물질을 간 여수에서 83개의 전복을 잡은 날이라고 하셨다. 해녀는 경험과 숙련도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는데 할머니는 상군이었기에 홀로 가족을 책임질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딸들이 할머니를 대신해 국회의원의 꿈을 이루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한 풀 꺾인 목소리로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딸이 넷이라 대학에 보낼 수 없었다고 하시며 말씀을 이어갔다.


  “저가 무서운 세상 살았어요. 소설로 다섯 권도 못 쓸 거예요. 남편 죽고 앞이 캄캄했어요. 제주도는 고아원도 없었어요. 그때 친정엄마가 말했어요. 인생은 아리랑고개 열두 고개. 열두 고개만 넘고 있어 봐라. 그때는 행복이 온다. ‘피할 수 없는 인생살이’라고 저가 소설 제목 쓸라고 해요. 열심히 살다 보니까 죽으라는 법은 없데요. 저가 1995년도에 유럽 여행도 다녀왔어요. 딸들 덕분에. 프랑스 파리, 이태리 로마, 스위스 알프스산도 가고. 제 인생살이 유럽 여행에서 보람 찾았어요. 이렇게 무대에도 서고, 고생 끝에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너무 행복하고, 영광이에요.”


  춘옥 할머니의 주름진 미소에서 나의 외할머니가 겹쳐 보였다. 어릴 적 그녀의 주름진 손등은 나의 장난감이었다. 엄지와 검지로 거죽을 잡아 올리면 산처럼 불룩 솟아올랐다가 천천히 내려가는 게 철없게도 재미있었다. 할머니는 늘 태아처럼 등을 구부려 모로 누워 주무셨는데, 서 있어도 굽은 등은 그대로였다. 그땐 몰랐었다. 그녀가 왜 똑바로 눕지 않는 건지. 한글은 왜 바보같이 못 읽는 건지 묻지도 않았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할머니를 안으면 가슴팍에도 오지 않았었다. 그 작고 굽은 몸으로 평생을 정직하게 농사지어 8명(낳은 자식은 11명)의 자녀를 길러냈다. 할머니는 밭에서 상군이었다.


  해녀는 기계 장치 없이 맨몸으로 바닷속으로 들어가 숨을 참는다. 또한 해산물을 채취하지 않는 기간을 스스로 정해 생태계와 공존한다. 이들은 늘 함께 물질을 나가는데 망사리를 채우지 못한 해녀에게는 서로의 수확물을 나누어 준다. 바다에 한 구역을 정해 그곳에서 얻는 수익으로 마을에 학교도 세웠다고 말씀하시는 춘옥 할머니의 다부진 목소리에서 해녀들의 높은 공동체 의식과 자긍심이 느껴졌다. 유네스코 또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제주 해녀 문화’를 2016년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몇 년 전, 화가 에바 알머슨의 전시를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갔다. ‘행복을 그리는 작가’라는 별명에 맞게 전시회는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작품으로 가득했다. 나는 세계적인 화가의 마지막 작품이 궁금했다. 검은 천으로 가린 방 안에 들어가니 커다란 화면 가득 제주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영상은 그녀가 삽화를 그린 동화책, ‘엄마는 해녀입니다’였다.


  홍콩 잡지에 소개된 해녀 사진을 처음 본 작가는 마치 야생동물을 본 듯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제주도 우도에서 해녀들과 지내며 그들의 모습을 스케치며 이렇게 말했다.


  “해녀들이 서로 돕고 보살피는 모습에 감동하였다. 특히 자기 삶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을 통해 관계에 대해서도 배웠다. 해녀들은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자연이 주는 만큼만 물질을 했다. 단지 물질하는 방법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지혜를 아름답게 전해줬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어머니들, 그들의 소중한 가르침이 숨비소리와 함께 영원하길 바라며 공연장을 나왔다.


- 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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