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졌다. 공연의 여운이 어둠처럼 짙게 깔렸다. 편의점에 들러 와인과 치즈를 샀다. 숙소로 올라가니 2층부터 사장님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휴게실에는 오늘도 우리 셋뿐이었다.
사장님은 내게 내일 일정을 물었다. 한라산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손님이 내 신발을 가리키며 그걸로는 안 된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한 달 전, 올레 1코스가 시작되는 이곳에 묵었었단다. 그리고 올레 27개 코스 437km를 완주하고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이틀 전에는 한라산 백록담에 올랐다고 했다. 산행에 아이젠은 필수라며 눈 덮인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윗세오름까지만 갈 것이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아이젠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등산화를 가져와 내게 내밀었다. 이걸 나한테 빌려주면 어떡하냐고 하니 자기는 슬리퍼를 신으면 된다고 했다. 내가 머뭇거리니 그녀는 무릎을 꿇고 등산화를 신겨주었다. 끈까지 매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쇠고리에는 끈을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걸어야 발목을 더 단단하게 붙잡아 줘요.”
신발은 여유 있게 잘 맞았다. 하지만 나 때문에 발이 묶일 그녀가 걱정됐다. 그녀는 어차피 숙소에서 쉬려고 했었다며 아이젠까지 씌워주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연신 방을 들락거리며 생수, 청포도 사탕, 보온병 등을 내 앞에 조용히 올려 두었다. 주인분은 아직도 줄 게 남았냐며, 그녀를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칭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휴게실로 갔다. 사장님은 나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비 예보가 있단다. 비가 오면 얼마나 오겠어, 하고 서둘러 토스트를 먹었다. 그런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내게 다가와 곱게 접은 우의를 내밀었다. 그 순간 사장님과 나는 동시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고맙기도 했지만 민망했다. 하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반드시 정상까지 잘 다녀오겠노라고 씩씩하게 외치며 길을 나섰다.
굽이굽이 가파른 고갯길을 운전하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달비가 내렸다. 간신히 1시간 반을 달려 주차장에 도착했다. 배낭을 메고 우비를 덮어 입었다. 그 순간 그녀의 체취가 내 몸의 모든 구멍으로 들어왔다. 30일간의 올레길 여정을 강력한 냄새가 증명했다. 그녀가 알려준 대로 등산화 끈을 발목까지 단단히 동여매고 아이젠을 찼다. 그리고 점퍼 주머니에 사탕을 한 움큼 집어넣고 장갑까지 꼈다.
이제 출발이다. 고도가 높아지자 내리던 비는 점차 눈보라가 되어 몰아쳤고, 주위는 아득하고 적막했다. 오르막길은 끝없이 펼쳐졌다. 기댈 곳은 폭이 한 뼘도 안 되는 듬성듬성 박힌 나무 기둥뿐이었다. 한참을 오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때 바스락바스락하고 사탕이 만져졌다. ‘아, 이게 있었지.’ 나는 거센 바람을 등지고 섰다. 그리고 장갑을 벗고, 언 손으로 간신히 껍질을 까 초록색 사탕을 입에 넣었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달콤한 맛에 정신이 들어 다시 발을 내디뎠다. 가다 보니 지쳐서 멈춰있는 커플이 보였다. 나는 사탕 두 알을 그들에게 건네고 다시 올라갔다.
속눈썹에 눈이 맺혀 얼어붙었다. 막막했다. 하지만 게스트 하우스의 동지를 떠올리며 걸음걸음 힘을 냈다. 꼭 끝까지 가서 자랑하고 싶었다. 홀로 산을 오르고 있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드디어 해발 1,700m 윗세오름에 다다랐다. 대피소 구석에 앉아 컵라면 뚜껑을 열고, 빌린 보온병에 담아 온 뜨거운 물을 부었다. 금세 다 익었다. 우선 매콤한 냄새로 콧속을 개운하게 깨우고 국물을 들이켰다. 얼큰한 기운이 목구멍을 지나 식도를 거쳐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면발까지 먹으니 온 세상에 평화가 깃들고 다시 내려갈 에너지가 충전됐다.
숙소로 돌아가니 저녁이었다. 휴게실에는 사장님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앉아 있었다. 나는 오른손에는 등산화, 왼손에는 치킨을 들고 그들에게 성공을 외쳤다. 음식을 나눠 먹으며 등산 ㄷ무용담도 나누었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 감사를 전했다. 덕분에 난생처음 눈 덮인 한라산에 갈 수 있었다고, 그리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고.
다음날 집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나 대신 아이들과 분주한 아침을 보냈을 남편에게 곧 이륙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껐다. 눈을 감으니, 설국의 한라산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김포공항에 도착해 전화를 켰다. 남편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조심해서 오고, 콩나물 김칫국 끓여 놨으니 먹어.”
갈 때는 핀잔을 주더니 음식까지 준비한 것이었다. 칼칼한 국물을 떠올리니 침이 고였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가까이에도 있었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 떠났나 보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말했다. 어제의 산이 오늘의 그것이 아닌 것처럼, 나 또한 떠나기 전의 내가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파트 입구에 서 있는 공작 단풍나무가 낯설게 아름답다. 이전에도 있었나 싶게 새롭다. 떠나보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