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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제주가 아니야(4)

해녀의 부엌

by 철부지곰 Feb 22. 2025

  제주로 혼자 여행 가기 이틀 전, 집 근처 서점에 갔었다. 맛집이나 유행하는 카페를 알아 두려고 평 대에 놓인 여행 책자를 펼쳤다. 에메랄드빛 세화해변의 사진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음 장에는 제주의 맛과 멋을 담은 특색 있는 음식과 예쁜 디저트의 화려한 색깔이 보기만 해도 황홀했다. 그런데 그 틈에 한 흑백 사진이 눈에 띄었다.


  흰색 물적삼을 입고, 머리에는 물수건과 물안경을 두른 할머니가 주름 가득한 얼굴로 아기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밑에는 공연과 음식이 제공되는 국내 최초 해녀 다이닝 ‘해녀의 부엌’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제주는 해가 지면 할 게 별로 없다. 혼자 저녁을 먹는 것도 고민이었다. 그런데 연극도 보고 저녁도 먹을 수 있다니 구미가 당겼다. 그런데 여행기간이 짧아, 내가 갈 수 있는 날은 단 하루뿐이었다. 인기가 많아서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는 글을 보고 서둘러 휴대전화로 검색했다. 다행히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서둘러 결제하고 책방을 나왔다. 사진 속 할머니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노을을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달려 공연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활선어 위판장이었는데, 어촌인구가 줄고 해산물 판매도 뜸해져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공간을 청년 예술인들이 ‘해녀 극장식 레스토랑’으로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등대가 켜진 부둣가에 몸을 묶은 채 쉬고 있는 고깃배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극장에 들어서니 긴 식탁이 앞쪽에 있는 무대와 수직으로 두 줄 놓여 있었다. 뒤편에는 굵고 큰 글씨로 주인의 이름이 적힌 주홍색의 테왁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나는 해녀 전통 복장을 한 직원의 안내로 자리에 앉았다. 그곳에는 내 이름이 적힌 카드와 뿔소라 껍데기로 만든 수저받침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공연장이어서 어두웠지만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인상은 선명했다.

 

  첫 순서는 해녀 연극 공연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젊은 예술인들이 최고령 해녀인 춘옥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어린 춘옥은 제주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제주 4.3 사건으로 학교가 문을 닫고, 오빠는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갔다.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춘옥은 12세에 해녀가 되었다.


  21세에 시집간 춘옥은 임신 중에도 물질을 할 만큼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5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결혼한 지 10년 만에 남편이 죽고 홀로 바다와 싸우며 아이들을 키워냈다. 자신이 못 이룬 꿈을 딸이 이루길 바라며, 열심히 가르쳤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딸을 공부시키는 사치를 한다며’ 그녀를 한심하게 여겼다.


  연극을 보는 내내 젊은 춘옥의 모습에서 우리 엄마가 보였다. 어렸을 때 새 학년이 되면 가정환경 조사서를 나눠줬었다. 부모님 학력을 적는 칸에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이라고 적었었다. 아빠는 도시에서 장남으로 자라 대학을 나왔는데, 시골에서 8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엄마는 대학에 가지 못했구나… 엄마도 공부를 잘했을 텐데 속상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알았다. 엄마는 중졸인 것이었다.


  친구들이 곱게 빗은 양 갈래머리에 반듯한 교복을 입고 여고에 가는 것을 보면 그렇게 속상했다고. 순옥이는 나보다 공부도 못했는데 고등학교 나와서 꼬부랑글씨를 곧잘 읽는다며 부러워하셨다. 그래서 엄마는 동창회에 가기 전 상표에 쓰인 영어를 나랑 미리 연습해 갔다.


  "그래도 순옥이 아들보다 우리 딸이 더 똑똑혀. 거봐. 대학도 더 좋은 데 갔자녀. 역시 자식은 엄마 머리 닮는겨."라고 말하는 엄마의 턱 끝이 살짝 치켜 올라와 있었다.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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