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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Apr 08. 2024

투이의 낮과 밤

  생각했던 것보다 수입의 규모가 큰 것 같았다. 한 씨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치 인신매매범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불법 체류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일 시키고, 사람 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아서 거대 수입을 벌어들이는 구조라니……. 돈을 떼이거나 부당한 취급을 당해도 자신들이 불법 체류자란 이유로 어디 가서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용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우린 배추 끝나면 무 작업도 해요. 규모가 큰 해남, 무주, 정선 같은 지역은 우리가 집을 매입해서 일꾼들 거처할 곳을 마련해 두죠. 그런 지역은 숙소를 구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 민가를 구해서 개조하거나 땅을 사서 조립식으로 집을 지어요.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 사람들이 움직이는 인력 규모가 엄청난 것 같았다.


  사람들 관리는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어렵지 않으세요?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 달라서 우여곡절이 많긴 하죠. 이런 일 오래 하다 보니 사람들 특색을 알아서 이제는 아무 문제 없이 하고 있죠. 중국 사람들 부부가 같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꼭 방을 따로 마련해줘야 해요. 절대로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자려고 하지 않죠. 그리고 음식도 꼭 자기들이 장을 봐서 직접 해 먹으려 해요. 우리나라 음식 안 먹고 자기 나라 음식을 해서 먹죠. 가스통 들고 다니면서…….


  그러고도 한참을 더 테이블 위에 배를 걸치고 선 채로 이야기를 하던 한 씨가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고는 비로소 마당에 주차된 차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갔다. 한 씨의 말을 듣고 보니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로 정말 중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준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모두 까맣게 살갗이 탄 상태여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누가 중국인이고 누가 필리핀 사람인지 잘 구분되지는 않았다.  김 씨와 방을 같이 쓰는 투이도 필리핀 사람인지 베트남 사람인지 잘 구분하지 못했던 것처럼. 투이는 김 씨와 방만 같이 쓰지, 해가 머리 꼭대기를 지나 비스듬해질 무렵엔 밭으로 나가 배추 수확을 하는 노동자였다. 그래서 온몸이 땀으로 젖어 녹초가 된 모습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때 준표가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왔다. 그는 내게 간단하게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자며 친구 라면을 내밀었다. 나는 괜스레 공업용 기름으로 라면을 튀기는 바람에 뭇매를 맞았던 라면을 왜 사 왔냐고 말했다. 그게 언제 적 일이냐, 한 번 혼이 나본 기업은 정신 차렸을 것이라며 준표 또한 실답잖게 대답하고선, 자기 집인 양 익숙하게 냄비를 찾아 가스레인지 위에 물을 올렸다.


  야, 너네 숙소에 머무는 그 뚜인지 투인지 하는 여자 말이야.


  응, 왜?


  그 여자가 우리 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더라. 반장 애인이라고 하지 않았냐?


  그렇다더라고…….


  근데 배추밭에서 일도 하고 밤엔 반장 상대하고, 참 그 여자도 뭐랄까. 참…….


  자기가 선택한 일일 텐데 뭐. 본인도 필요한 게 있으니까 그러고 있겠지.


  나는 왠지 투이를 동정하는 일이 그녀를 모욕하는 일인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대답했다. 준표는 그런 내 마음 따윈 관심 없는 사람처럼 무심하게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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