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나.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에 소극적인 성향으로 보였던 아이였다.
집 밖에선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일이 극히 드물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조용조용 있는 듯 없는 듯, 맡은 바 제 할 일을 꼼꼼하게 다 하는 성실한 학생’
‘손재주가 좋아서 미술시간을 가장 좋아했고, 재밌어하던 아이‘였다.
이런 아이에게 ‘너는 왜 그렇게 말이 없니!‘ , ’ 자신감 있게 큰 목소리로 말을 해야지.‘, ‘그렇게 말수가 없으면 안 된다. 먼저 말도 걸고 그래야지 ‘
이런저런 말들… ‘말말말’에 대한 어른들의 걱정 어린 시선들은 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채 쏟아지곤 했다.
특히,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런 유의 말들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쓰디쓴 약’에 불과했다.
나는 ‘외향적이거나, 말이 많지도, 목소리가 크지도 않은’ 아이인데 말이다.
이런 내가 마치 무언가 잘못된 사람이고, 남과 비교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나는 마음이 세심하고 여려서 별 뜻 없이 내뱉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거나, 자신감이 낮아지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내면에는 확고한 생각과 좋아하는 것이 뚜렷한 아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향 덕에 친구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
감성이 풍부해서 공감도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응원해 주는 주변의 시선들이 부족했던 것이다.
아이였던 나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고,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동안의 나는 공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만들고 그리는 것이 좋고, 할 줄 아는 게 미술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런 나의 특기를 아버지에게 인정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언제나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었던 엄마’가 계셨고, 나에게 미술을 해보라며 적극 추천 해주신 ’미술 선생님‘이 계셨다.
어느 날은 속내를 시원하게 드러내지 않는 내가 답답하셨는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도대체 네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그때의 나는,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때, 돌아올 ’거부‘에 대한 불안과 갈등‘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나의 의견은 무시당했다고 그때의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 것은 아마도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이 만들어낸 편중된 기억일 것이다.
어린 시절 경험한 나에 대한 ‘거부’와 나다운 것이 아닌 내가 가지지 못한 것과의 ‘비교’를 느끼며, 자존감이 고개를 떨구고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움츠러만 있을 수 없는 내면에는 ’ 자기 색이 강한 자아가 꿈틀거리고, 고집스러운 아이‘가 늘 함께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미술을 하고 싶고, 할 줄 아는 게 미술밖에 없어요.’라며, 조금은 고집스러운 모습으로 ‘그 생각에 대한 정확한 이유나, 타당한 설명도 없이, 설득력이 부족한 주장‘을 내뱉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란 사람이 가진 생각이나 감정들을 자유롭게 외부로 표현하고 표출하는 것이 서툴렀고, 나에 대한 평가를 할까 봐 그런 상황을 피해 스스로를 억압해 왔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고집스러운 나의 목표를 아버지에게 드러냈고, 고2 중반 무렵 처음으로 입시 미술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아버지 입장에선 탐탁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결국은 다 내가 원하는 대로 ‘지원’을 해주셨던 것이다.
이 시기부터 나의 자존감이 조금씩 어깨를 펴고, 힘을 받고 있었다.
미술실기 테스트 후 ‘조소’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찰흙으로 붙였다 떼었다 하며 다양한 시각에서 관찰하고 입체로 표현하는 과정이 나에겐 꽤나 큰 편안함과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나의 ‘자아’가 세상밖으로 나와 빛을 발하는 순간 자신감이 높아졌고, 뚜렷한 목표가 생기면서 학업성적도 자연스레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힘겨운 입시과정을 거쳐 원하던 대학에 운 좋게 들어가게 되었고, 선배들과의 ‘대면식’이 있던 날이었다.
여전히 말수가 적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에 자신이 없던 나였다.
자기소개까지는 어찌어찌 잘 넘어갔지만, 조교님의 말 한마디에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던 ‘서러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너는 왜 그렇게 말이 없니?”
아뿔싸… 꾹꾹 눌러 잠가두었던 불안이 터져버렸다.
‘멈추지 않는 서러움 그득한 눈물‘에 그때의 나도, 조교님도 당황했던 기억.
그 당시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감 없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시간이 흘러 ‘미술심리’를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 했고, 심리학을 기반으로 ‘나에 대한 분석’을 수 없이 하던 날들이 이어졌다.
싫든 좋든, 내면의 진짜 내 모습을 솔직하게 대면해야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나에 대해 안다.’는 것이 ’아,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여러 시간 동안 당황스럽도록 경험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지금의 나의 시간과 경험, 생각, 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특성, 강점, 약점, 억압하고 불안을 느끼는 이유들, 내가 느껴왔고, 지금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깊게 파고들어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런 내면의 과정들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깊이 있게 나를 분석한다는 것이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깊이와 방향이 다를 것이며, 얼마나 솔직하게 나를 들여다보느냐도 자신만이 아는 기준이며 깊이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게슈탈트 심리학 수업시간의 일이다.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 카드 중에서 ‘지금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선택 후, 그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 시간이었다.
내가 고른 카드는 ‘길 위에 어떤 중년의 남자가 뒤돌아 서있는 그림’이었다.
놀랍게도 나와 함께 수업을 받던 친한 동료가 ‘언니의 아버지 같아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내가 이 카드를 골랐던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뒤돌아 서서 천천히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고, 그 중년의 남자가 ‘나의 아버지’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버지’가 떠오른다는 말을 하는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이때 그동안 묵혀왔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대립되고, 억압되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조금씩 해소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를 알아가고 받아들이며 변화시키는 노력의 과정들은, 다양한 나의 모습 중에 ‘낮은 자신감으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던 나’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나조차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바라보지 못하던 시간들’ 때문에, 타인에 대한 감정이 곪아가기도 하고, 감정의 탈이 점점 더 두꺼워져 버리기도 한다.
지금의 나도 완전하지 않지만, 그 시절의 나처럼 ‘스스로와 소통하며 인정하고, 해소하고, 어깨에 힘을 좀 빼고서 가볍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여전히 여리고 세심한 마음의 소유자라서 때때로 감정의 파도가 거세지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의 힘으로 감정의 파도를 잘 흘러 보내고, 조절할 수 있는 나로 살아가야겠다.
나 스스로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지지’와 ‘지원’보다도
지치지 않는 강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