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마음도 한층 깊어진다. 따스한 햇살이 여전히 창문을 스치고, 그 따스함 속에서 나는 눈을 감는다. 이 순간, 나무는 마지막으로 몸을 흔들며 그 떨림을 땅에 남기고, 바람은 그 흔적을 속삭이듯 지나간다. 나는 그 바람에 스스로를 맡긴다. 바람이 지나가면 무엇이 남을까. 무엇이 내게 남을까.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그 차가운 공기를 마주하기 전에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계절의 끝자락에서 나 자신을 어떻게 마주할까. 한숨을 쉬고, 다시 한 번 눈을 감는다. 햇살은 따스하지만, 그 안에 묻어 있는 추위는 가을이 지나면 깊어질 것이다. 겨울은 차갑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숨을 쉬어본다. 내게는 이 계절이, 매일을 살아가는 나를 붙잡아두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길게 지나온 시간들은 어느 순간 묵묵히 지나갔다. 이제 그때 그때의 나를 돌이켜봐도, 그때의 나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지나간 시간들은 그저 흐르고, 나는 그 속에 녹아들었던 나의 일부를 놓아준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또 다른 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여전히 있다. 지나간 것들을 붙잡고 싶지만, 그것들이 내게 남겨진 것들일 뿐, 내일을 위해서는 놓아야 한다는 것을.
가을은 그저 한 계절이 아니다. 내게는 그 이상이다. 지나간 날들 속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놓았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돌아본다. 그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그 일어나는 순간이 언제일지, 그게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나를 기다리고, 세상을 기다리고, 이 계절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기를.
가을이 지나고 나면, 겨울이 온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그 겨울 속에서 나를 마주할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기다림 속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무엇인가를 깨달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내일의 나를 위한 무언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