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의 첫 날. 찬란한 아침 햇살이 조용히 창문 틈새를 뚫고 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새해가 시작된다는 그 말은 언제나 새롭고, 그 새로움 속에 잠시 멈춰서면 불안함과 설렘이 함께 밀려온다. 이 두 가지 감정이 엮인 순간, 나는 일종의 고요함을 느낀다. 마치 세상이 멈춘 듯한 그 고요함 속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어떤 아련한 애틋함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무언의 기대감이다.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며 자신을 새로 태어나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것이 다소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다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새해의 시작은 단지 변화를 향한 다짐이나 목표 설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고여 있던 물속에서 비로소 물결을 일으키는 순간처럼,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을 돌아보는 일이다. 마치 겨울 끝자락에 온몸을 맡기고, 세상이 전혀 다른 색을 띠기 시작하는 것처럼, 한 해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몇 년 전, 나는 한 겨울의 날, 차가운 바람에 몸을 떨며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길을 걸었다. 그 길은 누군가의 발자국이 남아 있지 않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그 길이 단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담고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길에서 느낀 감정은 나를 흔들었다. 내가 그렇게 매일 지나쳐왔던 길에서 나는 멈추었다. 그 길이 그토록 아름다웠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다. 일상의 무심한 흐름 속에서, 한 순간 멈추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다. 지나간 시간들을, 잃어버린 순간들을 되새기며,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그동안 바쁘게 달려왔던 삶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그 안에서 진짜 나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해의 다짐은 단순히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 숨어있는 '나'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도 쉽게 우리의 본질을 잃어버린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한 번쯤 멈추어야 한다. 마치 한 겨울, 차가운 땅 속에서 봄의 싹이 움트듯, 내가 지금까지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피어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내면에서 움트는 작은 기운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그 기운이 내 삶을 새롭게 만든다.
우리의 삶은 고요하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삶의 한가운데서 흔들림 없이 자리를 잡고, 그 자리에 놓인 작은 꽃 한 송이처럼, 우리의 내면도 그렇게 피어날 것이다. 겨울을 지나 봄이 오듯, 새로운 한 해가 열리는 이 순간, 나는 그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다. 꽃이 피는 것은 겨울이 지나 봄이 오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을 향한 본능적인 갈망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희망이 맞물려야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새해는 단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 시작이 단순히 달력을 넘기는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새해는 우리가 이전에 지나쳤던 것들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무언가를 품고 나아가는 것이다. 봄이 오기 전에 겨울이 지나가야 하듯,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준비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바람과 눈, 그리고 얼어붙은 땅을 거쳐서야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을 맞이할 수 있다. 그 봄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 안에서 이미 움트고 있는 작은 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