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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마지막 계절

by 아무개


12월 31일, 그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순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고 있는 듯하지만, 속은 다르다. 매일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이 순간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눈앞에 놓인 마지막 계절, 겨울의 끝자락에서 나는 내 몸과 마음이 모두 기댈 곳 없이 흩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손끝이 시리도록 차가워지고, 마음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따뜻했던 지난 시간들이, 이제는 겨울 속에 갇힌 듯 점점 사라져간다. 내 뺨을 스치는 찬 바람 속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이 순간이 이렇게 다가온다는 사실에,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얼굴들 하나하나, 손끝으로 지우듯 지나가버린 시간 속에 희미해진다. 그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꿈을 꾸었다. 따뜻한 손길, 한 번도 놓지 않으려던 그 손이 이제는 내게 닿지 않는다.


매년 12월 31일이 오면, 나는 똑같이 생각했다. ‘이번 해에는 뭔가 달라질 거야.’ 하지만 그 기대는 항상 허무하게 깨진다. 변화를 원하면서도, 그 변화가 내게 올 때마다 나는 그 변화를 두려워했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 모든 끝을 맞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 매일매일, 시간을 보내며 나는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나를, 오늘 이 겨울 끝자락에서 바라보면, 그 모든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모른다. 지나온 시간 속에 숨겨진 작은 순간들이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지금껏 놓쳤던 것들, 놓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나를 조용히 괴롭히고 있다.


겨울, 그 찬바람 속에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그 길 위에 쌓인 눈발은 점점 더 높아지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작아져만 가는 느낌이 든다. 추억들이 차가운 바람과 함께 날아가고, 그 모든 것이 다시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으로 사라져 간다. 나의 하루, 나의 인생에서 지나온 순간들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갔는지. 그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 무엇을, 무엇을 놓쳤을까?


한 해의 끝에서 나는 그 무엇도 남기지 못한 채, 그저 지나온 날들만을 되새길 뿐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한 가지를 배운다. 끝이 있기에 새로운 시작이 온다는 것이다. 끝이 있기 전에, 나는 언제나 그 끝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그 끝이 지나간 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이었다는 것을. 끝자락에서 나는 그 순간들을, 그리운 얼굴들을, 더 이상 놓지 않으려 했다. 그리워하면서도 다시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추억들을 다시 내 안에 새기려 한다.


겨울이 다 가고, 새로운 해가 올 것이다. 그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그때 내 마음은 어떤 모습일지, 나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순간을 맞이하려 한다. 그동안 지나친 것들을 놓고, 앞으로 올 것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려 한다. 하지만 그 준비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12월 31일이 오겠지만, 그때에도 나는 여전히 이 순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래도 나는 끝자락에서 말하고 싶다. 그 모든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그 시간이 내게 남긴 작은 조각들이 나를 오늘 이 순간까지 오게 만들었다. 겨울이 끝나가고, 새해가 오듯, 나는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할 것이다. 끝이 있기에 또 다른 시작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끝을 맞이하며, 나는 조금 더 담담히, 조금 더 깊게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 계절, 마지막 겨울에서 배우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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