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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Oct 03. 2024

나는 가끔 빛에 그려



나는 가끔 빛에 그려 마음에 새긴 글자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내 이모가 시신 기증을 이야기했을 때는, 또 다른 이모가 걷지 못해 휠체어를 끌어 같이 산책을 가는 길에는, 또 그 길에서 함께 불렀던 찬양이 있었다.



축복이가 가고 남은 자리를 ‘미소’라는 아기가 대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리고 그 미소가 축복이와 너무 닮고 너무 다른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마음과 다른 방향으로 말이 나갔을 때가, 마중 나간 말이 너무 서둘러서, 혹은 그 발걸음이 서툴러서 오해를 낳았을 때는. 나는 굳이 변명하지 않고 사과를 하거나, 숨거나 또 빙빙 둘러, 너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다시 제자리를 빙빙 돌았다.



사랑하는 친구가 떠났을 때 나는 술을 또 약을. 커피에 늘 위스키를 타 먹던 그 녀석 커피잔에 건배를. 그리고 말 그대로 재수 없게 떠난 사랑했던 이에게 ‘했던’을 쓸 수 없는 현재 진행형인 끝이 난 사랑에게 찬사를.



음악이 미운 만큼 크게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고개를 들고 좌우로, 오늘도 하늘을 대략 10번쯤 봤다는 사실에, 내 하루의 평점은 별 다섯 개를. 꾹꾹 눌러 담는 글을 쓰자며 약속했던 그이가 ‘삶의 허무함’을 논할 때 진정 느끼는 허무함을. 그로서 나는 정말 눌러 담는 것을 넘어 압축 또 압축. 내가 만든 정수를.



매일 먹는 우울증 약은 자기 전에 7알, 임시약 하루 2번 총 4알. 4년. 하루 취침 다섯 시간. 일어나면 불안에 기도를. 기도함에 내가 느끼는 불안에게 감사를.



하고 싶은 것이야. 천 원짜리 식당이나 내 이름을 딴 고아원이나, 다시 태어나면 목사나 시인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이야, 돈 안 되는 자랑거리다. 음악과 글을 평생 곁에 두고 밥벌이하며 살아온 고상한 내게 박수를. 우리 부모님 월세에서 아파트 나는 연약한 인간이라, 이것이야말로 솔직한 감사를.



사랑은 일순간에 깜박임이여, 그것을 캐치하는 나의 예민함이 사랑의 증거이다. 그 증거는 다시 나의 유일한 재주가 되어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식(食)이 되고, 욕심이 과할 때는 구토로 나를 정죄하는 잠언이 되어 돌아온다.



이쯤에서 어디 대단한 글쟁이들이 현학이라 하나, 병신이라 하나 네 부랄 털만큼도 관심 없다고 하겠다. 말 그대로 무아지경.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거라. 죽기 전에 나는 더 타야만, 반드시 그래야만 할 터이니.



백지 위에 글을 적으려니, 더한 백색의 글이. 백색으로 새겨진다. 장인이 알아보겠는가. 아니다. 이 글은 장님이 알 터. 그것도 색을 지닌 꿈을 꾸는 자가, 그것도 아니라면 살며, 단 한 번이라도 빛을 보았던 자가. 내 젊음을 앗아간 사기꾼과 내 젊음을 소비한 나라와 내 젊음을 함께한 사랑과 내 젊음을 살게 한 꿈. 이제 삼십 대 중반이 된 나에게 더 무엇이 함께하려 하는가.



나아질 것이 있다면 분명 나은 것도 있고 나아진 것도 있다는 말인데… 늘 부족함을 느끼는 건 그들의 늘 잘 살고 있다는, 자신들의 삶은 완벽하다는 포장 때문인지, 아니면 늘 멀쩡해 보이려는, 생존하려 하는 나의 본능과 껍질 때문인지.



퇴화된 꼬리뼈는 언젠가 꼬리가 필요했던 우리를 말하는가. 사람이 비겁하고 늘 속이고 기만하며 자만하고 자랑한다면 그 사람에 탓인가 그러한 진화를 부축이는 상황의 탓인가. 아니면 거대하면, 일단 많으면, 냅다 크기만 하면 박수부터 치고 보는 우리의 못난 손바닥 탓인가. 불알을 탁 치고 볼 노릇이다.



에세이는 경험을 땔감 삼은 적은 아궁이며 소설은 상상의 밧줄에 매달려하는 곡예이며 시는 손끝으로 글을 만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지금 나는 무엇을 쓰려하는가.



언제가 돼서야,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글을 쓸 텐가. 내가 상상하는 집과 아내와 강아지 중 아내와 강아지는, 내 기준에 맞춰 준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면 나를 얼마나 소름 돋는 인간으로 보게 될까. 아니, 얼마나 내가 소름 돋는 인간인지 들키게 될까. 그러니 당장 내 손끝에 스치는, 발에 치이는,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치졸할 수 없기에.



빛을 조각내어 무지개를 만들자. 홍수는 꺼졌어도 한여름 장마는 멈출 줄 모른다. 비는 내리고 그치고를 잊은 적이 없다. 그것이 한 사람의 역사이니, 우리 모두 무지개가 되어라. 빛에 조각조각이 되어, 너와 나 무지개가 되어라.



상실은 도처에 있다. 나는 장례식에 상주할 때마다, 기도원에서 듣는 옆 신자의 울부짖음을 들을 때마다 신의 마음을 조금 읽을 수 있는데, 신은 전혀 인간의 아픔을 달갑게 느끼지 않는다. 다만, 다만이다.



과연 당신에게 취미라는 것이, 취향이라는 것이 있을까? 십중팔구, 아니 백이면 백. 당신의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심어준 것. 조각조각.



그래서 나는 오늘 빛에 적는다. 너만이 알아볼 수 있게끔. 이것은 감춰진 글이자 백지인데 이 안에 무엇을 발견하든, 네 삶의 중대한 변화를 줄 것이라 확신한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 나는 당신이 정확히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자, 이제 뒤로 가기. 책 덮기. 당신도 빛 한 줄 그린 그림자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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