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네 운명 따위가 아니야
어느덧 나이 오십이 된 오이디푸스, 왕비 이오카스테와 함께 정원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 올리브 열매를 넣어 찐 밥 위에 계란을 부쳐서 올린 오믈렛에 토마토 몇 개를 반찬으로 한 지중해식 요리다. 그리고 말린 허브를 넣은 따뜻한 차가 가을의 쌀쌀한 기운을 막아주는 듯하다.
이디푸스: 이제 당신도 어느덧 65세가 넘었다니 믿기가 어렵구려ᆢ 여전히 나에겐 청순한 소녀인데 말이오.^_^;
오카스테: 참, 30년이 지나도 당신의 플러팅은 여전하군요ᆢ 하긴. 그 점이 당신 매력이지요. ^-^
이디푸스: 오늘이 결혼 30주년 기념일인데, 뭐 하고 싶은 거 있소? 먹고 싶은 거라던가ᆢ갖고 싶은 거라던가ᆢ
오카스테: 당신이 무엇이든 해 주니 특별히 그런 건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정말 갖고 싶은 게 있지요.
이디푸스: 그게 뭐요?
오카스테: '진정한 우정'이요. 난. 왕비의 신분이니까 모두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조아리고 내 지성과 미모와 품격을 칭찬하지만, 내가 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이디푸스: 그럼?
오카스테: 나는 그저, 내 신분이니 뭐니 계급장 다 떼고 카페에서 몇 시간 동안 깔깔대며 이야기 나누고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필요해요. 하지만 주식이니 코인이니 환율이니 부동산이니 하는 이해도 안 되지만 들을수록 짜증만 나는 경제이야기도 싫고, 자녀 교육이니 대학입시니 고교학점제니 학교선생들 뒷담화도 싫어요.
이디푸스:(정말 까다로운 여자야ᆢ ㅡㆍㅡ; ) 그래 그래요. 뭐 또 더 싫은 건?(일 년에 한 번뿐인 결혼기념일이니 맞춰주자ᆢ 하하ᆢ^^;)
오카스테: 할머니들이 하는 김장 배춧값이니 며느리들 욕, 남편욕도 듣기 싫어요. 뭔 연예인이 누구랑 사귀네 불륜이네ᆢ 그런것들도요! 그런 이야기들은 정말 내 수준을 확!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 같다니까요!
이디푸스: (어느 정도 해야지 원ᆢ 너무하네ᆢ) 아니, 당신은 그런 성격을 가지고 무슨 친구를 사귀겠다는 거요? 여자들이 그럼 그런 이야기 빼고 뭘 말할 수 있는데? 나니까 그런 당신하고 결혼해서 사는 거요!
오카스테:( 어차피 내가 왕비라서 결혼한 거 다 아는데 뭘ᆢ ㅡㅡ;) 어쨌든, 나도 내 성격 까칠한 거 아는데, 그래도 너무 외로워요. 당신도 매일 영지 둘러본다고 말 타고 나가서 사냥이나 하고 늦게 들어오고ᆢ
이디푸스: 그러면, 당신은 친구들과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요? 설마 뭐 우주과학이나 양자역학이나 핵분열이나 유전자 가위나 아니면 사후세계나 영생이나 신이 있네 없네 그런 거요? 그런 얘기하면서 깔깔대긴 무척 힘들 텐데ᆢ
오카스테: 바로 그거예요! 난 그런 문학 역사 사회학 철학, 과학 같은 학문적인 얘기를 하면서 내 지성을 더욱 고양시키고 자기 계발을 하고 싶은 거라고요!
이디푸스: 그렇군. 그럼 내가 이 테베에서 유명한 학자들을 섭외해서 당신과 당신처럼 학문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을 위한 강연을 열도록 하지!
(좋은 생각이야. 이것으로 이 테베 여성들의 환심을 사서, 지지율을 더욱 올릴 수 있겠어. 최소 10년은 왕노릇 하는데 문제가 없겠군ᆢ)
오카스테: 좋아요..! 그리고! 내가 알기로 이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현자가 딱 한 명 있다고 알고 있어요! 그 '여자'를 꼭 불러줘요! 내 스승이자 동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여자라고요!
이디푸스: 당신이 그렇게도 원한다니 그녀가 저기 은하계 몇 백 광년 떨어진 별에 있다고 해도 꼭 섭외해 보지! 근데 그게 대체 누구요?
오카스테: 그건 바로ᆢ 스핑크스예요!
7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