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인형

조금만 힘을 풀고 깊게 숨을 쉬어봐

by 남하린


아끼던 새하얀 토끼인형이 있었다. 나는 토끼인형이 더러워질까, 혹여 사람들에게 뺏길까 두려워 꽁꽁 싸매고 또 숨기고 다녔다. 품에 꼭 안고 힘을 꽉 주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변질되는 게 무서웠다. 내가 아끼는 것을 뺏길까 무서웠다.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끼는 항수는 원치 않는 장소에 뿌리고 가지 않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옷은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입지 않는 것도. 이런 깊은 내 고질병 전부가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이 거칠고 난잡한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분리하고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벅차오르던 순간이 있었고, 사랑하던 꿈이 있었고. 그러나 결국 이 길을 선택하지 않은 건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던 일마저 변질되어 혐오하게 될까 봐서였다. 잃을까 봐 무서웠다. 뺏길까 봐 두려웠다.


매 순간, 매삶을 그리 살아왔던 듯싶다. 내 삶 기저에 늘 존재하던 정체 모를 불안의 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걸까?


내가 사랑하는 것마저 변하게 둘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세월이, 혹은 세상이 가져가 버리게 둘 수는 없었다. 실은 아직도 모르겠다. 그것이 옳은 일이었는지, 혹은 그른 일이었는지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계속 찾으려 할 수는 없기에.


그래도 지금은 적어도 힘을 조금 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토끼인형을 꽉 쥐고 있는 내 손을 말이다. 나도, 그 인형도 지치고 힘들었을 세월을. 한 번쯤 다독여주고 싶은 것뿐이다.


토끼인형은 내 모든 사랑이고, 청춘이고, 꿈이다. 삶의 이유 혹은 존재의 이유라 불러도 좋을 만큼 내 전부이며 소중하다. 그런 인형을 꽉 쥐고 나만 보며 세상에 내놓지 않으려는 고집을 난 무조건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얼마나 소중한지 아니까.


그러나 조금은 편해지고 싶은 건 사실이다. 힘을 빼고 좀 더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다. 내 안에서만 눈부시게 빛나던 너를 세상에도 한 번쯤 보여주고 싶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얼마나 빛나는지.


그랬다면 너는 어쩌면 토끼 인형이 아니라 정말 토끼가 되었을지도 몰라. 내가 너를 더 이상 크지 못하게 가두었던 걸지도 몰라. 널 지키려고 했던 게 오히려 널 죽였을지도 몰라.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덜 불안해질 수 있을까. 너를 잡은 손을 조금은 놓아야 할까. 너를 더럽힐 각오를 내가 할 수 있을까. 지키기만 했던 내가 한순간이라도 놓아볼 수 있을까.


늘 그렇듯 답도 없이 질문만 가득하다.

답으로 가득한 그 어느 날도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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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