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둑눈

by 몽유

시절은 이렇게 수상해도 배는 곯지 말라는 위로일까. 정월 대보름에 함박눈이 내려 그렇잖아도 발갛게 열이 올라 부은 두 눈으로 어느 날엔가 재앙처럼 가버린 임종을 이제야 마주한다. 눈은 점점이 하얗게 제 멋대로 날리는 듯해도 행여나 누가 볼까 봐 네 조그만 발자국은 기어이 꼭꼭 감추고야 마는 것을. 나는 어찌 알고 너를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이 아닌 어느 시간에 또다시 어느 눈 쌓인 거리에서 너를 찾아 헤매다 잃어버린 슬픔을 숨기려 애를 쓸까. 시간이란 것이 제 멋대로 흐르게 내버려 두면 어이없이 떠나보낸 내 슬픔도 무뎌진다지만, 무뎌지는 슬픔 딱 그만큼씩 짙어지는 내 그리움은 어떻게 하라고 이토록 하얀 도둑눈 위에 발자국 몇은 남겨두었을까.



keyword
이전 19화작심(作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