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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冬靜思 (입동정사)

by 몽유

立冬靜思 (입동정사)


雪壓千山靜 (설압천산정)

風消萬木聲 (풍소만목성)

不知春意遠 (부지춘의원)

微動土中心 (미동토중심)



눈이 내려 온 산이 고요하고

바람이 멎어 온갖 나무의 소리 잠드는데

봄의 뜻이 멀어진 듯 알 길 없지만

흙 속 깊이 미묘한 숨결이 일어나는구나





입동의 아침은, 마치 계절이 숨을 고르는 듯한 잠깐의 침묵으로 시작된다. 새벽빛이 닿지 않은 골짜기마다 밤사이 내린 눈이 얇은 막을 이루고, 그 아래에서 세상은 스스로를 잊은 듯 고요하다. 바람조차 무언가를 더 흔드는 것이 미안한 일인지, 나뭇가지 끝에서 마지막 한 호흡만을 남기고는 조용히 스러진다. 그 적요의 순간, 소리는 형태를 잃고, 시간은 속도를 늦춘다.

겨울의 문턱에서 자연은 그가 품었던 모든 것을 멀리로 보낸다. 멀어진 것은 봄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한때 가까이 두었던 마음의 온기, 한 번 더 손을 뻗어 붙잡아 보려 했던 작고 소박한 희망들. 그 모든 것들 역시 차갑게 식어 어느덧 손끝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나면, 우리는 곧 제자리에 멈춰 서서 묻는다.

정말 봄은 멀어져 버린 걸까? 따스함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깊이 귀 기울이면, 대답은 흙 속에서부터 온다. 겉으로는 얼어붙은 대지이지만, 그 속에는 결코 멈추지 않는 미세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아직 이름도 형체도 갖지 못한 생명의 숨결이, 마치 겨울의 침묵을 조심스레 밀어 올리듯 미약하게 꿈틀거린다. 그것은 우리가 잊고 지내던 내면의 온기와도 닮았다. 계절에게도, 사람에게도 완전히 정지된 시간은 없다. 가장 고요한 순간조차 어떤 변화로 흘러가고, 어떤 시작은 이미 흙 속에서 준비되고 있다.

입동의 풍경은 그래서 더없이 엄숙하면서도 따뜻하다. 눈은 세상을 덮지만,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움직임들을 완전히 감추지 못한다. 겨울의 침묵은 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작의 징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생명은 늘 그 보드라운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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