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성의 과잉..여기서는 부정성을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재가능한 상태로, 긍정성을 모두가 같음에 강요받는 그리고 과잉된 상태를 긍정성의 과잉상태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왜 굳이 긍정성과 부정성이란 단어를 사용하였을까? 동질성의 과다는 곧 대량화를 의미하고 긍정이란 나와 주위의 모두가 긍정하는 동질화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모든 과잉 상태는 동질성을 전제로한다. 다름이 과한상태는 과잉으로 칭하지 않는다
지금사회는 철저한 성과사회로 변화되었다. 성과사회는 규율사회와 반대로 무한긍정의 사회인 것이다.
다름에 규율하던 사회와 달리 긍정의 무한확장이 성과가 되는 그런 사회에서 다름은 우울과 번아웃을 가져오게 되는 피로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양하게 있는 것 같지만 모두가 같은 유행과 같은 생활방식.....결국은 긍정의 무한과잉이 곧 성과인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한병철 피로사회-
한번이라도 다름에 찬미한적이 있던가
한번이라도 긍정의 과잉이 가져오는 무기력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
한번도 없다면 그 피로가 결국 만성이 된 것일 뿐 못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과 내일이 다름을 기대하기에는 초 예측시대에 사는 지금은 이미 불가능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것이 매일을 퇴사와 복권에 명운을 거는 내인생을 설명할 유일한 단서이니까
에렝베르의 표현에 따르면 "우울증은 규율사회의 명령과 금지가 자기 주도로 대체
될 때 확산된다 했지만" 이책에서는 "후기근대적 노동사회의 규율이된 성과주의"를 그 원인의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모두 일맥상통하지만 가장 선언에 가까운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 것 같다
"긍정성의 과잉상태에 아무 대책도 없이 내던져져 있는 새로운 인간형은 노동하는 동물" -한병철 피로사회-
부정하고 싶은 과격한 표현이지만 부정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한병철 피로사회-모든 실패와 성공은 결국 개인의 몫이라는 결론이겠지..
모두가 머리를 쿵 두드리는 아차 그렇네 ~~ 하는 표현이 나오는 말들인 것 같다.
내 스스로 내던져진 환경이지만 벗어날 용기와 상황이 안됨은 내 자발적이요..
그 상황에서 내가 성공할수 있음을 버텨낼 수 있음을 믿는 것은 성과사회에서 내가걸려든 최면일 수 있지만 두렵다..
그 생각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우리는 우울과 번아웃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고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
긍정성의 과잉은 결국 자극, 정보, 충동의 과잉으로 표출되기도하며 현대에 와서는 멀티태스킹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멀티태스킹이란 한가지에 집중하지 않고 여러 가지의 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함으로써 넓지만 평면적인 주의구조를 만들어낸다. -한병철 피로사회-
결국은 주의의 분산과 평면화를 통해 깊은 사색의 삶이 아닌 긍정성의 과잉이라는 삶의 형태를 취하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다 빠른 정보처리와 주의의 분산을 요구하는 사고의 형태는 결국 정보의 과잉성 안에서 쳇 바퀴 돌 듯 정보를 씹다 내뱉는 과정을 반복하여 결국 소화시키지 못한 정보의 껍데기만 입 안에 남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사색하는 상태에서만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와서 사물들의 세계속에 침잠 할 수 있는 것이다.
- 한병철 피로사회 -
존재를 의지로 대체한 니체조차 인간에게서 모든 관조적 요소가 제거된다면 인간 삶은 치명적인 과잉활동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라고 이야기 했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 니체 -
관조의 자세는 결국 사색의 상태를 가져오게 되며 나 자신을 내 밖으로 나와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자신의 상태가 평온하고 멀티태스킹이 아닌 집중할 수 있는 요소를 필요로 한다. 전시회에서 그림에 집중하듯, 연주회에서 음악에 집중하듯 우리는 우리자신에 대해 집중하고 관조할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가 항상 필요 하다.
멀티태스킹은 니체가 말한 새로운 야만상태로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과거 수렵시대의 인간은 먹고있는 상태이든 쉬고있는 상태이든 어떠한 상태에서도 주위를 경계하고 소리와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야 안전한 상태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진화하고 현대문명으로 둘러쌓인 이때에 다시 야만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과연 인간은 진화하고 발전된 문명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