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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적 페시미스트와 에피쿠로스적 에피큐리안

비관 속 긍정, 격정 속 평온

by 글씨가 엉망

디오니소스적 페시미스트와 에피쿠로스적 에피큐리안의 구별은

다분히 니체적 관점에서의 분류인 것 같다.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문구인데 머리에 쉽게 각인되는 문장이어서 기억이 난다.

영원회귀와 아모르파티의 개념은 페시미스트와는 언뜻 연결지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니체가 이야기하는 디오니소스적 이라는

단어의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디오니소스적이라는 단어는 아모르파티.. 운명에 대한 받아들임

이상의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매순간순간 회귀되는 순간마다 운명 임을 인지하고 격정적이고

치열하게 포도주와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처럼 운명에 긍정하는,

삶의 고통, 혼돈, 몰락 조차 긍정하는 그런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페시미스트는 어떻게 봐야하나?

페시미스트는 세상에 대한 니체의 시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긍정주의의 반대로 보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아닌 한번은 의문을 가지고 다소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삶의 태도..

거기서 나오는 오히려 긍정의 에너지..

에너지에서 이어지는 영원회귀와 아모르파티


결국은 페시미스트는 비관주의가 아닌 현실에 대한 문제점을

바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진정한 격정적인 삶을

살기 위한 방향인 것이다.


어찌보면 디오니소스와 페시미스트의 역설적인 의미속에서의

격정속의 긍정이라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에피쿠로스적 에피큐리안은 철학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라기

보다는 안일한 평균화에 대한 경계? 아타락시아의 바다에서

절대자에 대한 찬양으로 고무된 삶에 대한 비판?


왜냐하면 니체가 주장하는 삶이란 고통과 허무를 치열하게

버텨낸 후 격정속의 평온과 고통까지 나의 것으로 찬미하는 삶이므로


에피큐리안... 니체는 신의 존재아래 전체의 평균화를 에피큐리안이라

규정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다소 독단적 발상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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