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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주 빚기(삼해주)

중밑술 편

by 적선 Feb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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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화요일

정신없이 일상을 살다 보니 어느새 두 번째 해일이 찾아왔다.

1월 중순부터 첫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사회초년생으로서, 한 달 가까이 출퇴근을 해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이제는 아무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봐주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는 걸 실감한다. 처음에는 퇴근 후 운동도 하고 책도 읽었지만, 이제는 집에 오면 그저 기절할 뿐이다. 직장인의 삶에 대한 기대와 현실의 괴리감이 커질수록 스트레스도 커져만 간다. 요즘은 심지어 꿈에서도 회사에서 일하는 장면이 반복될 정도다.

그래도 배운 것은 많다. 팀장과 나, 단 둘뿐인 팀에서 출근 다음 날부터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반복하다 보니 업무 습득 속도는 빨라졌다. 하지만 그만큼 내 시간은 줄어들었고, 예전보다 더 강하게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초보운전자인 내가 출근을 위해 첫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오가면서 처음의 살 떨리는 두려움이 점차 무뎌졌다는 것이다. 물론 주차는 여전히 무섭다.


술 빚는 날

삼해주는 해일마다 술을 빚어야 하는 술이다. 아무리 야근이 있어도, 아무리 피곤해도 이 날을 포기할 순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구를 세척하고 소독한 후, 냉장고를 털어 만든 비빔밥을 서서 먹으며 오늘의 공정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오늘은 처음 시도해보는 '물송편'을 만드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멥쌀가루(1.5kg)와 밀가루(300g)를 체에 곱게 내려 섞어준다.  


    끓는 물(1L)을 조금씩 부어가며 익반죽을 해 여러 덩어리로 만든다.  


    덩어리들을 끓는 물에 넣고, 완전히 익지 않은 상태(2/3정도)에서 건진다.                  반죽이 물에 뜨면 익은 것이다.            


    건져낸 반죽을 잘게 풀어 식힌 후 밑술과 섞는다.  


    항아리에 담아 면보자기를 씌운 후, 12~14℃에서 저온 발효시킨다.


밀가루를 넣는 이유는 술맛을 청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물송편의 모양을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물송편 자체는 만들기 쉽다. 반죽을 떼어 동그랗게 빚으면 된다. 하지만 익힘 정도가 중요하다.

물에 뜨면 익은 거라 했지만,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어 중간중간 꺼내서 갈라보며 확인했다.

처음 해보는 과정이라 혹시 실수하면 술맛이 망가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점이 있다. 물에 막 뜨기 시작할 때 바로 건지는 것이

가장 좋은 익힘 상태라는 것. 그리고 꺼내자마자 으깨야 식은 후에도 쉽게 풀어진다.


기다림의 연속

으깬 물송편을 충분히 식힌 후, 12일 전에 만들어둔 밑술과 섞는다. 이 과정을 '혼화'라고 한다. 혼화가 잘되지 않으면 술이 시어지거나 발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20~30분 동안 부지런히 손으로 만지며 잘 섞어주었다.


삼해주는 발효 기간이 길기 때문에 과발효를 방지하기 위해 저온 발효(12~14℃)를 진행했다. 좋은 누룩을 사용한 덕분인지 밑술이 활발하게 발효된 흔적이 보였다. 다행히 술 향도 좋고, 은은한 사과 향이 퍼져 발효가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가운 밑술을 반죽과 섞는 과정은 마치 촉감 놀이 같았다. 하지만 막상 병에 옮겨 담으려니 깔끔하게 끝낼 수 없겠다는 걸 깨달았다. 어차피 정리는 피할 수 없으니 빠르게 작업을 마무리했다.


식탁은 엉망이 되었지만, 소독은 철저히 해야 한다. 잡균 오염을 막기 위해 발효통부터 식탁까지 에탄올로 꼼꼼하게 닦아낸 후, 발효통을 거실 한쪽에 두었다. 집에서 저온 발효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아이스박스에 발효통과 얼음팩을 함께 넣어두는 방법을 사용했다. 경험상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이번 중밑술 과정도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술 빚기는 그야말로 기다림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기다림 끝에 마시는 한 잔을 생각하면, 오늘도 내일도 기꺼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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