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나 단양주
우보농장에서 쌀과 누룩을 받은 지 6일이 지났다.
어쩌다 보니 이번 주 내내 야근이었다.
금요일 밤이 되어서야
겨우 술을 빚을 준비를 시작했다.
상사는 한 달 초과 근무 40시간을 채우길 원했다.
돈과 건강을 맞바꾸는 기분이었다.
피곤에 절어 있던 몸, 축 처진 어깨.
그래도 쌀 냄새를 맡는 순간, 묘하게
기분이 나아졌다.
6일 동안 물에 담가둔 쌀은 매일 물을
갈아준 덕분인지 다행히도 산장법 특유의
애기똥 같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채반을 꺼내 쌀을 쏟아 붓는다.
4kg이나 되는 불린 쌀이 채반 위로 넘실대며 쏟아져 내렸다.
순간, 한계점을 시험하는 듯 휘청거리는 채반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번엔 대용량 찜솥을 장만했으니
한 번에 밥을 찔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조금 들떴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인덕션이 찜솥을 버티지 못했다.
이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빨리 밥만 지어놓고 자자’라고 다짐했건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지출한 돈을 생각하며 어떻게든
새 찜솥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몇 시간이 흘러도 밥은 익을 기미가 없었다.
새벽 3시, 결국 예전 찜솥을 꺼내
여러 번 나눠가며 밥을 지었다.
완성된 밥을 넓게 펼쳐 식힌다.
젖은 면보를 덮어두고 뒷정리를 하고나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토요일 점심, 본격적인 술 빚기의 시작.
전날 불려둔 수곡에선 짚푸라기 향과 솔향이 난다.
수곡을 짜내고, 잘 식은 밥을 발효통에 담았다.
거기에 수곡과 물 3L를 더한 뒤,
20분간 힘껏 저었다.
이제 빠르게 효모를 증식 시키기 위해
3일간 품온을 높였다가
안정적인 발효를 위해 온도를
18도까지 낮추면 된다.
4L나 되는 물이 들어가 축축한 상태였지만
금방 스펀지처럼 흡수해 뻑뻑한 상태가 되었다.
담요로 발효통을 감쌌다. 온기는 발효통 안에서
미세한 기포를 만들어냈고 쌀은 술을 내뱉기 시작했다.
27일 전에 채주를 해야 한다.
4월 1일 전까지 술을 제출해야 하니까.
촉박한 시간. 단양주는 저온에서 오랜 시간 발효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지 불안하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술을 발효통에 넣는 순간, 이미 모든 것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남은 일은 기다리는 것뿐.
술 빚는 사람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한 모금의 술을
맛보는 것이 그에 대한 보상이다.
술을 빚는 사람의 운명이란 결국,
기다림을 즐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