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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의 "잠깐 볼 수 있을까?"가 길어지면 생기는 일

by 이자까야 Mar 13.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오전 10시 30분.


나는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다짐했다.

"제발 오늘은 조용하게 지나가자."

일을 적당히 마치고,

점심은 맛있는 걸 먹고,

퇴근 시간 맞춰 딱 집에 가는 하루.

하지만, 직장 생활에서 그런 하루가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잠깐 볼 수 있을까?”


책상에서 메일을 정리하던 순간,

바로 내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봤다.

예상대로 팀장님이었다.


아...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팀장님의 ‘잠깐’ = 1시간 이상


직장인이라면 다들 알고 있다.

상사의 "잠깐 볼 수 있을까?"는 절대 ‘잠깐’이 아니다.

최소 30분, 보통 1시간,

운이 나쁘면 퇴근 시간까지 붙잡힌다.


나는 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혹시 실수한 게 있었나?

지난주 보고서에 문제 있었나?

오늘 아침에 보낸 메일이 잘못됐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거부권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팀장님을 따라갔다.

회의실 문이 닫히는 순간,

나의 자유도 함께 사라졌다.


“그거 말이야...”

팀장님은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 나를 향해 말했다.

“지난번에 하던 프로젝트 있잖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힘겹게 완성했던 그 프로젝트.

나는 이미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팀장님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이걸 좀 더 보완하면 좋을 것 같아."


보완?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기억을 뒤졌다.

그 프로젝트는 이미 수많은 수정 끝에 마무리된 상태였다.

이제 더 이상 손댈 게 없었다.

그런데 다시 보완을 하라고?

그 말인즉슨, 또 야근하라는 뜻이다.


팀장님은 왜 이렇게 말할까?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법칙을 깨달았다.

팀장님의 말은 직설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보자.


팀장님: "이거 수정하는 데 오래 걸릴까?"

진짜 의미: "지금 바로 수정해서 가져와."


팀장님: "고생했어. 근데 한 두 가지만 수정하면 좋을 것 같은데?"

진짜 의미: "처음부터 다시 해와."


팀장님: "잠깐 볼 수 있을까?"

진짜 의미: "네 오후 일정은 이제 내 거야."


나는 팀장님의 말 속에 담긴 진짜 의미를 깨닫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예감했다. 퇴근은 없다.

팀장님은 자료를 넘기며 설명을 이어갔다.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 뭐 먹지?"

"야근할 거면 커피라도 한 잔 더 마셔야 하나?"

"퇴사하면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퇴사 후 나의 통장 잔고를 떠올리자,

그 고민은 빠르게 종료되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때쯤

회의실에서 나오니 어느새 오후 6시가 다 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오늘 처리하려고 했던 일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메일함에는 빨간 숫자가 가득했다.


"아... 이걸 다 언제 하지..."


나는 자리에 앉아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그리고 그때, 옆자리 동료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팀장님이 또 ‘잠깐’ 보자고 했어?”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동료는 묵묵히 커피 한 잔을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이 순간만큼은 말이 필요 없었다.


결론: "잠깐 볼 수 있을까?"는 절대 잠깐이 아니다.


나는 조용히 커피를 들이켰다.

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사무실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다들 ‘잠깐’ 붙잡혀 하루가 길어져 버린 사람들이다.


그때 문득 한 가지 깨달았다.


"우리는 결국 다 같은 배를 탄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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