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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숨겨진 메소포타미아의 보물

앗시리아 라마수 이야기

by 류형돈 Feb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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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Mesopotamia)를 빼놓고는 결코 인류 문명의 기원을 말할 수 없습니다. 이곳은 그리스어로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을 가졌는데, 지금의 시리아와 이라크를 흐르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이 흐르는 유역을 지칭합니다. 바로 이 지역에서 인류가 보리와 밀 재배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농사를 지었고, 그 어느 곳보다 일찍이 여기에 도시가 생겨났으며, 이곳에서 쐐기문자 (cueniform )라는 인류 최초의 글이 발명됐고, 기원전 1750 년경 당시 세계 최대 도시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가 대리석에 법문을 새기며 법치주의를 처음 시행했습니다. "누가 다른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면, 벌로서 그의 눈도 멀게 한다," 그리고 "누가 여자를 쳐 죽인다면 벌로서 그의 딸을 죽이도록 한다," 등등 현시대의 잣대로 보면 무시무시해 들리는 3백여 개의 법령이지만 여기서 법치주의가 출발했으니 인류 발전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받는 일입니다. 당연히 그 주변 민족들이 메소포타미아를 우러러봤습니다. 일례로 구약 성경을 쓴 사람들은 에덴동산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 사이에 있었다고 기술했고, 또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의 우르 (Ur)에서 왔다고 썼습니다. 이렇게 당시 누구보다도 앞섰던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석조 문화재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숨겨져 있습니다. 기원전 9 세기경 이 지역을 지배하던 앗시리아 (Assyria) 제국의 수도 님루드 (Nimrud)의 유물인 라마수 (lamassu)라고 불리는 반인반수 보호신 석상과 양각 부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라마수의 머리는 곱슬머리와 수염을 한 전형적인 중동 사람의 모습이고 거기에 황소의 몸과 새의 날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라마수의 곱슬머리는 동그라미를 규칙적으로 배열해서 표현했고, 그 날개는 반복되는 깃털 패턴으로 묘사했는데 사실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측면 때문에 현대 미술 애호가들에게도 어필합니다. 두 개의 커다란 라마수 석상은 이 박물관의 한 전시실 입구 양편에 마치 기둥처럼 서 있고, 그 옆으로는 날개가 달린 신, 그리고 왕을 보좌하는 내시를 묘사한 석조 부조가 있습니다. 앗시리아의 왕도 그 부조에 등장합니다 (아래 그림 참조). 지금의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 (Mosul) 근처 티그리스 강가에 위치한 님루드를 수도로 정하고 엄청난 규모의 궁전을 지었던 앗시리아 제국의 왕 아슈르나시르팔 2세 (Ashurnasirpal II)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 지역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문명을 꽃피웠던 앗시리아는 그런데 기원전 7 세기 바빌로니아와 그 연합 세력의 침략을 받고 망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 도시와 궁전들은 점차 중동의 흙먼지에 덮이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님루드 왕궁에서 출토된 앗시리아 왕 (왼쪽)과 그의 관리 (오른쪽)를 묘사한 부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님루드 왕궁에서 출토된 앗시리아 왕 (왼쪽)과 그의 관리 (오른쪽)를 묘사한 부조.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거의 3천 년 가까운 기간 동안 흙더미에 묻혔던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궁전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입니다. 당시 서유럽의 많은 청년들이 모험을 찾아 세계의 오지로 진출하던 시절입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청년들은 군인으로, 언어에 재주가 있던 청년들은 외교관으로, 그리고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은 고고학자로 이곳에 왔습니다. 그 와중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지원을 받았던 프랑스 고고학자 폴 에밀 보타 (Paul Emile Botta)는 이 지역에 위치한 코르사바드 (Khorsabad)에서 앗시리아 도시의 흔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유적이 니네베 (Nineveh)라고 주장하며 <니네베 유적>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니네베라 하면 구약 성경에서 고래에게 먹혔다가 살아났다는 요나 (Jonah)가 선교 활동을 하던 도시로 유명한 곳입니다. 니네베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이 영국 청년 오스틴 헨리 레이야드 (Austen Henry Layard)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중동 여러 지역을 여행하던 이 청년은 전문 고고학자는 아니었지만 중동의 고대 유적들은 텔 (Tel)이라고 불리는 흙 언덕을 파면 발견되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를 소재로 해서 크게 히트 친 1980 년 영화 인디애나 존스 (Indiana Jones)에서도 텔 위에서 땅을 파는 장면이 나옵니다. 레이야드는 1845 년 자신이 가진 돈으로 값싼 현지 노동자들을 고용해 모술 근처 유프라테스 강가에 위치한 한 언덕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역사에 길이 남는 엄청난 발견을 했습니다. 땅 속에서 앗시리아의 수도 님루드의 엄청난 왕궁 유적이 나온 것입니다.


레이야드는 영국 대사관에 자신의 발견을 알리며 영국 정부의 공식 지원을 받아 이 지역을 더욱 대대적으로 발굴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고대 왕궁의 반인반수 라마수를 비롯해, 궁전의 벽면을 장식하던 화려한 양각 부조, 그리고 쐐기문자가 새겨진 수많은 점토판을 출토했습니다. 나중에는 모술 근처 티그리스강가의 또 다른 언덕 텔 나비 유누스 (Tel Nabi Yunus; 요나의 텔) 밑에서는 진짜 니네베도 발견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이렇게 발견된 유물들을 해외로 반출하는 것이 불가능했겠지만 당시 오토만 제국은 문화재 보호라는 개념이 미약했던 듯합니다. 오토만 제국의 총리실이 영국의 유물 반출을 다음과 같이 허락했다는군요.


"사막에 있는 돌조각들을 그들이 가져가는데 아무런 제지도 하지 말지어다."


당시 영국 측이 대단한 뇌물과 향응을 제공한 결과인지, 아니면 오토만 제국 관리들이 금 보다도 훨씬 중요한 유물을 그저 돌 보듯이 했는지는 지금 알 수가 없습니다.

레이야드의 발굴팀이 님루드 유적에서 라마수 석상을 옮기는 그림 (1851 년)레이야드의 발굴팀이 님루드 유적에서 라마수 석상을 옮기는 그림 (1851 년)

레이야드가 발견한 유물들 중 특히 사람의 눈을 끌었던 두 개의 라마수와 다수의 부조 벽화는 이렇게 해서 대영박물관 (British Museum)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레이야드가 발견한 라마수가 또 한 쌍이 있었는데요, 그는 이를 대영박물관에 넘기지 않고 자신과 친분이 있던 당시 영국 최고의 갑부 샤를롯 게스트 부인 (Lady Charlotte Guest)에게 주었습니다. 나중에 레이야드는 게스트 부인의 딸 에니드 게스트 (Lady Enid Guest)와 결혼하게 됐고요. 게스트 부인은 레이야드에게서 받은 유물을 바탕으로 자신의 저택에 앗시리아 양식의 현관을 만들어서 이를 진열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막바지에 게스트 부인이 죽은 후 20세기 초반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게스트의 후손들이 쇄락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결국 게스트 부인의 저택과 주위 땅은 캔포드 학교 (Canford School)로 넘어갔고, 게스트 부인 소유의 앗시리아 유물 컬렉션이 미술 시장에 나와 결국 새로 떠오르는 미국의 당대 최고 부자였던 존 디 록펠러 주니어 (John D. Rockefeller Jr.)에게 팔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록펠러는 라마수 석상과 부조들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하게 되면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인 1994 년 게스트 부인의 앗시리아 유물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컬럼비아 대학교의 고고학자였던 존 말콤 러셀 (John Malcolm Russell)이 게스트 부인의 저택이었던 캔포드 학교 건물을 살피다가 벽토로 덮여 있던 앗시리아 양각 부조를 발견했거든요. 이렇게 발견된 유물은 곧 영국 크리스티 경매장에 매물로 나왔는데, 그 당시 (Sadam Hussein)이 통치하던 이라크 정부가 이 유물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유출됐다며 그의 반환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라크의 요구는 묵살당했고 이 부조는 경매장에서 1천2백만 불에 팔리면서 역대 고대 유물 경매 가격의 기록을 갈아치워 버렸지요. 더욱 최근인 2018 년에 또 다른 앗시리아 부조가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에 매물로 나타났습니다. 그 부조는 레이야드가 헨리 바이론 해스켈 (Henry Byron Haskell)이라는 미국인 선교사에게 넘겼던 것인데, 해스켈이 이를 미국에 가져와 버지니아 신학대학교 (Virginia Theological Seminary)에 기증했던 것입니다. 이 유물들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온 것인지 또다시 논란이 됐지만 크리스티 경매장 측에서는 성명을 통해 "분명 오토만 제국의 총리가 허락을 했으니 국제법상 문제가 없다"라고 선언하고 경매를 강행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앗시리아 부조는 이번에는 3천1백만 불에 낙찰됐습니다. 2018 년 당시 고대 유물로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19세기 중반 레이야드가 영국으로 앗시리아 유적을 반출한 이후에도 이라크 고고학자들은 꾸준히 발굴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라마수 석상, 쐐기문자, 그리고 양각 부조들이 더욱 많이 발견되어 이라크 내의 여러 유적지 및 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도굴꾼들도 꾸준히 고대 유물들을 외국에 팔아 넘겼습니다. 불법으로 반출된 유물들은 반환해야 하는데요 2021 년에 워싱턴의 성서 박물관 (Museum of the Bible)과 코넬 대학교 (Cornell University)가 소장하던 1만7천여 점의 메소포타미아 유물이 이러한 이유로 이라크에 반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레이야드가 자신의 지인들에게 마음껏 나누어준 유물의 반출은 합법적이었다 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열심히 논쟁하던 2015 년 경 아이시스 (ISIS) 반군이 이라크 모술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이들 반군은 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통치를 표방했는데 우상숭배를 금한다는 명목으로 옛 앗시리아 석상들을 망치와 불도저로 파괴하며 그 장면을 그대로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앗시리아를 연구하던 고고학계는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지요. 몇 년 후 이라크 정부군이 아이시스 반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박살 난 앗시리아 유물과 나라의 신용은 되살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일부 이라크인들이 세계 문화유산을 돌보다 더 하찮게 본다는 미국 및 영국 박물관측의 편입견이 더욱 고착되었습니다.

2015 년 이라크 아이시스 반군이 파괴한 님루드 유적2015 년 이라크 아이시스 반군이 파괴한 님루드 유적

몇해 전 레이야드의 앗시리아 유물들을 다시 감상하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2026 년까지 보수 공사를 한다며 이 전시관을 폐쇄해 놓았더군요. 전시장 보수 공사가 6개월쯤 걸린다면 수긍할 수 있지만 삼 년 이상 전시관을 닫는다는 박물관 측의 설명에 혹시 유물 반환 문제가 전시관 폐쇄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더군요.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은 농업 혁명, 도시의 출현, 문자의 발명, 법치주의가 탄생한 곳이 메소포타미아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앗시리아의 석상들입니다. 이 유물들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드리워진 장막의 반대편에 그대로 서 있을까요? 그리고 2026 년 다시 개장하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앗시리아 전시관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모습이 지금부터 궁금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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