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덴두르 신전이 전하는 제국의 역사

by 류형돈 Jan 26. 2025

불과 4백 년의 일천한 역사를 가진 도시 뉴욕의 중심에는 감히 5천 년의 미술사를 보여준다고 자랑하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있습니다. 미합중국의 역사가 짧은 만큼 이곳에서 전시하는 미국 문화재들은 2백 년을 채 넘지 않고, 유럽에서 수입한 문화재들은 대게 2천 년을 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5천 년의 미술사를 보여주느냐고요? 이 박물관에서 2천 년 이상 된 전시물들은 대부분은 이집트 문화재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천7백여 년쯤부터 갑자가 많은 석조 문화재를 생산했습니다. 무덤도 돌로 만들었고, 사람 조각도 돌로 만들었으며, 신전도 돌로 만들며 그 표면의 돌에는 그림을 잔뜩 새겨 넣었습니다. 석기시대라 부르는 이 시기에도 실제로는 목조 건축물이 훨씬 많았다지만 5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꿋꿋이 서 있는 것들은 석조 유적들 뿐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이집트 전시실을 찾는 관객들에게 가장 강력한 인상을 주는 유물 중 하나는 덴두르 신전입니다. 기원전 10년에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천 킬로 가량 떨어진, 수단 (Sudan)과의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누비아 (Nubia)라는 지역에 세워졌던 석조 신전인데, 이를 통째로 뉴욕으로 옮겨 와 이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일정한 크기의 그림과 조각들에 익숙한 관람객들이 박물관 내의 이 거대한 신전을 접하면서 경탄을 합니다. 전형적인 이집트 문양이 가득 새겨진 신전이지만 이 신전은 로마인들이 이 지역을 지배할 때 지은 건축물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아우구스투스 (Augustus) 황제 재위기간에 지어졌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쥴리우스 시저 (Julius Caesar)의 양아들로서 황제 등극 이전에는 옥타비우스 (Octavius)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이었던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 (Antonius)를 기원전 31년 제압하고 로마 공화정을 종식시킨 후 황제에 등극한 인물이지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자살을 하게 됐고 아우구스투스는 이집트를 로마의 영토로 편입시켰습니다.

덴두르 신전에 새겨진 그림. (왼쪽) 이집트의 전통 신 하토르와 (중앙) 하렌도테스. (우측)에게 와인을 바치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덴두르 신전에 새겨진 그림. (왼쪽) 이집트의 전통 신 하토르와 (중앙) 하렌도테스. (우측)에게 와인을 바치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역사학자들은 제국 (empire)을 팽창하는 영토내에 여러 민족을 아우르게 되는 커다란 국가로 정의합니다. 그 영토 내의 이민족이 저항을 하고 독립 투쟁을 한다면 당연히 제국을 유지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투스는 수많은 영토를 로마에 복속시키면서도 평화를 유지해서 팍스 로마나 (Pax Romana)의 시대를 연 인물입니다. 그는 통치 수단의 하나로서 새로이 복속시킨 백성들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재위 당시 세운 덴두르 신전은 이집트 여신 이시스, 그의 남편 오시리스, 그리고 그들의 아들 호러스 (하렌도테스)를 섬기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집트 신전이란 백성들의 대표인 파라오와 그를 대신하는 제사장이 신들에게 음식을 바치는 곳이었는데요, 이를 반영해 신전의 돌 표면은 이집트 신들에게 음식을 바치는 파라오의 모습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위 그림 참조).원래는 이처럼 새겨진 그림에 색깔을 입혔다고 하는데, 2천 년의 세월의 풍파에 지금은 원래 물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박물관측에서는 일부 그림 위에 영사기로 빛을 투영해 원래의 채색된 그림이 어떠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원전 2천 년 이전부터 계속된 이집트 전통을 따라 묘사된 인물들은 얼굴은 측면을 향하고, 어깨는 정면을 향하면서, 또 다리는 측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남자 인물들의 어깨는 넓고 힘이 세 보입니다. 그림 주위에는 로마 문자가 아닌 이집트 상형문자를 이용해 등장인물들을 소개합니다. 신에게 음식을 바치는 이는 영락없는 이집트인처럼 보이지만 그 바로 옆에는 "오토크라토르 (Autokrator; 그리스어로 황제를 뜻함)", "카이사로스 (Kaisaros; 그리스어로 시저를 뜻함)"라는 뜻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즉 파라오 복장을 한 이는 다름 아닌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입니다. 

덴두르 신전의 상형문자. (왼쪽) 오토크라토르, 즉 그리스어로 황제를 뜻함. (오른쪽) 카이사로스, 그리스어로 시저 (Caesar)라는 뜻.덴두르 신전의 상형문자. (왼쪽) 오토크라토르, 즉 그리스어로 황제를 뜻함. (오른쪽) 카이사로스, 그리스어로 시저 (Caesar)라는 뜻.

나일강은 매년 범람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것이 이집트를 문명의 발상지로 발돋움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매년 상류에서 떠내려 온 새로운 옥토가 퇴적을 하니 비료가 없던 시절에도 농업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농업이 번성하니 부자가 출현했으며, 또 부자들 중에서 권력자가 나타나며 일찍이 문명이 꽃을 피웠습니다. 덴두르 신전에는 전통적인 이집트 신들 이외에도 그 당시 그 지역 실력자의 죽은 두 아들, 페데시 (Pedesi)와 피호르 (Pihor)라는 형제를 신으로 묘사하는 그림도 있습니다. 범람하는 나일강에서 익사한 아들을 위해 이 지역의 토호가 신전 뒤에 동굴을 파서 무덤으로 삼고, 그들을 이곳의 신으로 신격화하며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그리고 지방 맹주로서의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 주었던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을 그림을 통해서 표현한 듯합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이 지역에 큰 변화가 왔습니다. 나일강의 홍수를 막고, 수력 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또 농업용수를 더 원활히 공급하겠다고 1905년에 아스원 로우 댐 (Aswan Low Dam)을 건설했고, 1960년대에는 그보다 더 규모가 큰 아스원 하이 댐을 만들었거든요. 문제는 이 아스원 하이 댐 상류의 수몰지역에 중요한 고대 이집트 문화유산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유물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받드는 서방 선진국들은 이리하여 유네스코 (UNESCO)를 통해서 문화재 이전 작업을 도와주게 됐습니다. 가장 야심차고 주된 프로젝트는 누비아 지역의 나일강변에 위치한 22곳의 석조 유물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작업이었지요. 그중 대표적인 유물이 지금도 이집트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을 끄는 아부 심벨 (Abu Simbel) 신전인데, 서방의 기술자들이 힘을 모아 1967년에 이 석조 신전을 여러 돌조각으로 자른 후 고지대에 옮겨와서 다시 조립해 붙였습니다. 그리고 22개 유적지 중 비교적 규모가 작은 다섯 개의 유적은 돈과 기술을 가장 많이 제공한 국가들에게 선물로 제공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1천6백만 불을 후원한 미국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덴두르 신전을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아스원 댐 건설 이후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물에 반쯤 잠기던 모습의 덴두르 신전첫 번째 아스원 댐 건설 이후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물에 반쯤 잠기던 모습의 덴두르 신전

덴두르 신전을 유치하겠다고 미국의 여러 도시의 박물관들이 지원서를 제출했는데, 결국 미국 정부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제안서를 채택했습니다. 건조한 사막성 기후에서 2천 년의 세월을 버틴 이 신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습도가 낮은 실내 전시공간을 짓겠다는 이 박물관의 제안서가 심사위원들을 설득했다는군요. 그 이후 이 신전은 6백 여개의 블록으로 해체된 후 뉴욕으로 옮겨졌는데, 그 운송비만 6백만 불이 들었다고 합니다. 원래 신전의 뒤쪽에 있던 페데시 (Pedesi)와 피호르 (Pihor)라는 형제의 동굴 묘쇼는 옮겨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거대한 실내 전시공간이 완성된 1978년에 덴두르 신전은 다시 조립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또 오십 년이 흘렀군요. 강물이 범람해서 흥한 고대 문명에서, 강물에 잃은 아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졌던 신전입니다. 그 이후 영원할 것 같던 로마 제국도 막을 내린 지 오래되었고, 영원할 것 같던 나일강변도 호수로 변해 버렸습니다.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불리는 이 시대 세계 최고 강대국에 옮겨 온 덴두르 신전은 얼마나 더 오래 이 자리에 서 있을까요? 지금 이 땅의 평화가 오랫동안 계속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전 02화 제국이 탐했던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