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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와인은 명연기처럼 추억 속에서 영원히 빛난다

by 식물감각

『세 가지 색 : 블루』를 처음 본 건, 내 투자 인생이 한없이 허물어지던 시절이었다.

차트는 무너졌고, 계좌는 얼어붙었으며,

나는 마치 나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서 있었다.

영화 속 줄리엣 비노쉬처럼.

사랑을 잃고, 과거를 지우려 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애쓰던 그 여인처럼.

그러나 이상하게도 감정을 지우려는 그 순간에

나는 오히려 감정이라는 것의 가장 깊은 결을 보았다.

무너짐은 완전히 비어버린 공간이 아니라,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로서의 잔향이었다.

투자도 그랬다.

수익을 지키려는 싸움은 결국 감정을 통제하려는 싸움이었고,

나는 그 싸움에서 자주 패배했다.

무너지지 않으려 애쓸수록 나는 더 깊이 흔들렸고,

감정을 지우려 애쓸수록 감정은 더 또렷하게 내 안을 채웠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좋은 연기는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대사가 아니라 눈빛이고, 숨결이며, 침묵 속에서 무너지는 눈동자의 흔들림이다.

좋은 와인도 마찬가지다.

한 잔의 와인이 우리를 오래 붙드는 이유는

그것이 특별히 달콤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향은 지나간 계절 같고, 그 맛은 한때의 감정 같으며

그 여운은 한 시절의 나를 통째로 불러낸다.

몽라쉐를 마시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녀의 손목을 따라 움직이던 잔의 곡선,

그 안에 머물던 햇살, 그리고 마지막 한 모금의 침묵.

몽라쉐 한 잔은 마치 그녀의 마지막 눈빛 같았다.

그녀의 손끝이 잔을 스쳤을 때,

유리잔의 얇은 벽이 울렸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다 말해지는 침묵.

잔을 코끝에 가져갔을 때, 그녀가 한 번 눈을 감았다.

그 동작 하나에 계절이 지나갔다.

나는 그 순간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말보다 오래 남는 것은 침묵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첫 향에서 브리오슈와 백합이 피어났고,

혀끝에 닿은 산미는 오래 묻어두었던 마음 하나를 깨워냈다.

바디는 무겁지 않았고, 여운은 한숨처럼 길었다.

그날의 몽라쉐는 슬프도록 부드러운 여인의 살결 같았다.

사랑은 늘 허기를 불러온다.

나는 그 후로 잊히지 않는 와인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수익률이 아니라 감정의 잔향을 기록했고,

매수의 타이밍이 아니라, 그날의 심장박동을 기억했다.

수익은 순간이지만 감정은 서사다.

명연기는 흘러간 시간 속에서도 다시 떠오르고,

좋은 와인은 다 마신 후에도 입안과 마음속에 남는다.

투자도 마찬가지였다.

성공한 매매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그날의 나였다.

흔들렸던 나, 기대했던 나, 무너졌던 나.

그리고 다시 일어났던 나.

『세 가지 색 : 블루』에서 줄리는 결국 과거를 지우지 않는다.

그녀는 과거의 음악을 다시 듣고, 감정을 받아들이며,

끝내 스스로의 리듬으로 살아간다.

그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처럼, 나의 투자도 그렇게 다시 흘러갔다.

나는 더 이상 수익의 클라이맥스를 좇지 않는다.

대신 감정의 멜로디를 따른다.

그것이 기억으로 남고, 그 기억이 나를 만든다.

좋은 와인은 명연기처럼 설명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존재다.

나는 이제 그런 투자를 원한다.

모든 걸 보여주지 않아도 단 한순간으로 충분한

말하지 않아도 감정이 남는

빛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남는 잔향처럼

진짜 투자는 결국 감정을 숙성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추억 속에서 빛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 잔의 와인처럼.



� 스월링 노트 | 좋은 와인은 명연기처럼 추억 속에서 영원히 빛난다

1. 기억은 성과보다 오래 남는다

수익률은 일시적이다.

그러나 그 수익을 만들기까지의 감정, 결정, 떨림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투자에서 진짜 남는 것은 ‘얼마 벌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나였느냐’이다.

2. 명연기는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느껴진다

좋은 연기처럼, 좋은 투자는 어떤 순간엔 논리보다 감정으로 다가온다.

잘 매매한 것이 아니라, 잘 ‘존재한’ 사람이 기억된다.

당신이 투자에서 얼마나 진실했는지가 감동을 남긴다.

3. 와인은 서사다. 투자도 그렇다

좋은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다.

해마다 쌓인 기후와 토양, 양조자의 손길과 철학이 녹아 있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성향, 태도, 감정이 전부 배어 있다.

4. 모든 수익 뒤에는 감정이 있다

기쁨, 안도, 놀람, 불안, 환희, 그리고 공허. 수익은 감정을 만든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 남는 것은 그 감정뿐이다.

그것이 기억을 만들고, 나를 만든다.

5. 가장 빛나는 것은 마신 후에도 입안에 남는 여운이다

와인은 마셨을 때보다 다 마신 후에 진짜를 말한다.

투자도 동일하다. 그 결과보다 더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다루었느냐는 질문이다. 결국 좋은 투자도 예술이다.

좋은 연기처럼.




� 추천 와인 : 몽라쉐 도멘 바롱 테나르(Montrachet Grand Cru 2017 Domaine Baron Thénard)

생산지 :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코트 드 본(Côte de Beaune) 몽라쉐 그랑 크뤼

품종 : 샤도네이 100%

스타일 : 크리미 하고 농밀한 텍스처, 단단한 산미, 깊은 미네랄의 기둥 위에 얹힌 풍성한 과일과 견과류 풍미

� 테이스팅 노트

몽라쉐는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다.

밝고 투명한 황금빛 레몬 옐로우 컬러가 반짝인다.

유리잔 안에서 별처럼 번지는 점성은 마치 시간의 입자같이 눈부시다.

코를 가까이 대는 순간,

복숭아와 잘 익은 노란 자두, 배, 꿀의 향이 풍부하게 퍼져 나오며

곧바로 레몬, 자몽 껍질의 시트러스 아로마가 생기를 부여한다.

이어서 구운 아몬드, 헤이즐넛, 바닐라 크림, 갓 구운 브리오슈의 풍미가 관능적으로 스며들고

마지막에는 미네랄리티가 고요히 자리하며 깊은 뼈대를 드러낸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흙 내음까지 층층이 드러난다.

첫 입은 놀랄 만큼 섬세하면서도 강렬하다.

부드럽고 크리미 한 질감이 고혹적으로 혀를 감싸면서

산미와 미네랄이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미묘한 꿀과 버터, 견과류의 풍미가 중반을 지배하면서 알코올은 무겁지 않게 따뜻하다.

피니쉬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길게 이어지고

레몬 버터, 구운 헤이즐넛, 석회질의 미네랄이 남아

마치 오페라의 마지막 아리아처럼 장엄하고도 잊히지 않는 감각을 새긴다.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명연기처럼.

� 추천 이유

몽라쉐는 단순히 부르고뉴 최고의 화이트 와인이 아니다.

인생에서 단 몇 번 허락되는 ‘영원한 여운’을 입에 머금는 행위다.

도멘 바롱 테나르는 19세기부터 몽라쉐의 역사와 함께한 명문 도멘으로서

단순히 화려한 와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그들의 몽라쉐는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절제되어 있다.

그 절제 속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이 바로 명연기의 본질이다.

오크는 요란하지 않고, 산도는 고요하지만 강인하다.

미네랄은 배경음처럼 조용히 깔려 한 사람의 인생이 가지는 정중한 고독감을 완벽히 표현한다.

이 와인은 투자자의 여정과 닮았다.

성공과 실패, 열정과 냉정, 그 모든 진폭이 한 병 안에 담겨 있다.

단기적인 수익은 사라지지만

감정의 서사와 여운은 남는다.

마치 명배우가 무대를 떠난 뒤에도

관객의 마음속에서 계속 연기하는 것처럼.

결국 이 와인은 삶의 클로즈업이다.

빛이 사라진 후에도 입안의 여운으로 존재를 남기는 명장면처럼.

그리고 몽라쉐는 말한다. 모든 와인의 본질은 쾌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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