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 Diary

5. 나를 사랑하는 방법

by MAMA

2025-12-28

52:15

6.74km

7'44"

392kcal


나를 사랑하기 위해 혹사 당한 위에게 사죄하기 위해 오늘도 달렸다.

지독하게 자책하면서 매독 마라톤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안84를 보면서 달렸다.

프랑스 보르도 매독지역의 와이너리를 달리는 마라톤 음수대에서는 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같이 느꼈다. 보이는 곳마다 들르는 곳마다 와인이 있었다. 대체 달리라는 것인지 술에 취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곳곳마다 와인을 마시고 춤을 추며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기안84는 홀로 외로이 기록을 위한 또는 완주를 위해 묵언수행하며 달리고 있었다. 매독 마라톤은 그 지역의 아름다운 와이너리를 오감으로 즐기라고 만든 이색 스포츠 행사였다. 그러나 이전 마라톤의 전적을 마음에 꽤나 담아 둔 크루장인 기안84는 즐길 수 없었던 것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풍경 한 번 쳐다보지 않고 앞을 향해 달리는 모습이 불쌍해지기까지 했다. 러닝 머신 위에서 달리는 내내 탄식이 나왔다.


얼마 전 늦깍이 결혼에 성공한 남편의 후배가 한정식을 사주어서 점심을 거하게 잘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1층에 '안'씨 명장님께서 하시는 베이커리에 들러 빵을 또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 배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집에 오는 내내 당이 올라 꿈 속을 얼마나 헤매었는지 도착해서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러고 집에 와서 운전을 했던 남편과 두 딸은 기절을 했고, 난 열량 소비를 위해 청소를 했다. 창틀까지 닦아야 속이 후련한 성격이라 까짓것 한정식에 빵 몇 조각은 금방 타서 없어졌다. 남편과 두 딸을 깨웠다. 저녁 먹을 때가 되었다. 이 시간을 지나치면 무엇을 먹든 부담이 되고 뭘 먹자니 딱히 배가 고프질 않았다. 그래서 저녁식사는 비벼서 가는 만두를 데쳐서 물만두로 호로록 먹기로 했다. 작은 키에 손은 왜 이리 큰 지 1.2kg 한 봉지 3분의 2를 삶았다. 안 먹을 줄 아니, 못 먹을 줄 알았지만 다 먹어 버렸다. 또 밀려 올라왔다. 만두도 후회도...


그러고보니 점심 식사 약속 장소에서 도착하지 않은 남편 후배를 기다리면서 서점에 잠깐 머물렀던 기억이 났다. 베스트셀러 에세이 코너에는 나태주 시인의 '너를 아끼며 살아라', 최서영 작가의 '어른의 품위', 태수 작가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너무 쓸데 없이 불행하고 복잡한 행복이 아니라 아무일 없는 주말이 더 행복한, 나를 살필 줄 아는 너그러운 어른이 되는....

이해인 작가의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에서는 나를 아끼지 못한 친절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어쩌면 전부 다 나를 저격했는지 명중으로 가슴이 뚫려 버렸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이기적임이 아니다. 나처럼 나에게 혹독한 사람은 오래갈 수 없다. 주변에 있던 사람이 지쳐 떠나고 만다. 사람이 머무르게 하려면 나에게 나를 향한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 오늘 나를 사랑했더라면 만남 중에 서먹한 분위기를 없애고자 별의 별 쓸데 없는 말을 조금 줄여도 되었고, 조금 덜 먹었어도 되고, 굳이 청소를 죽자사자 하지 않아도 되었고 피곤한 몸으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저녁식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운동을 가고자 설거지를 초고속으로 해야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내가 다정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나를 수많은 노력으로 힘들게 하기 때문이란 것을 알아버렸다. 슬프다.


그래도 이 시간만은 나를 사랑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 달리면서 위로가 된 시간.

기안84가 희민이를 지금보다 조금 더 사랑하면 좋겠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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