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엄마가 묻는다. '오늘 학교에서 뭐 했니?' 아이는 떨떠름하게 쳐다보다 대답한다. '뭐, 수업 듣고, 책도 읽고.'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또 묻는다. '요즘은 누구랑 놀아?' 아이는 대답한다. '글쎄, 특별히...' 엄마의 표정을 보고 말을 덧붙인다. '두루두루 다 친해.' 하지만 이미 엄마는 결론을 내렸다. 친구가 없구나.
내가 생각하는 초등학생 학부모의 상담 주제 1위는 '우리 아이의 친구 관계'이다. 부모들은 우리 애를 괴롭히는 애는 없는지, 혹 우리 애가 왕따는 아닌지, 늘 노심초사 걱정한다.
쉬는 시간에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친구 이름을 잘 못 댄다. 엄마 입장에선 걱정이 된다. 당연하다. 이 아이는 외톨이일 수 있다. 그럼 아이 입장은 어떨까?
외톨이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자발적 외톨이와 타의에 의한 외톨이다.
우선,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친구 사귀는 게 귀찮은 부류, 요즘은 참 많다. 스스로 혼자 있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 속이 상하겠지만, 내 기준에서 이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부모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본인이 불편한가, 힘든가, 그게 기준이다. 이 아이들은 충분히 행복하다.
다음으로 자신은 함께 어울리고 싶은데, 다른 아이들의 의사에 의해 혼자 있게 되는 경우, 이런 경우가 문제이다. 물론 우리는 각 사안을 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어울리고 싶어 하는 아이를 '악의'를 가지고 배제시키는 경우, 그건 당연히 우리가 아는 왕따이다. 여기서 내가 악의란 단어를 굳이 사용한 이유가 있다. 아주 애매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말과 행동이 과격하고, 거칠다. 보드 게임을 해도 규칙을 안 지키고, 이기려고만 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그 아이와 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집에 가서 애들이 게임에 안 끼워준다고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의 엄마는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했다고, 학폭을 열어달라고 말한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절차에 따라 진행을 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특별한 조치 사항이 나오지 않지만, 조사를 받고, 위원회에 참석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자신의 아이를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일단, 친한 동네 엄마 얘기는 걸러 들어야 한다. 그렇게 들리는 이야기는 사실도 아니고, 화를 돋우는 경우가 많다. 담임 선생님에게 물어보는 게 맞는데, 이렇게 일이 벌어진 다음에 물어보면 당연히 잘 대답해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학폭이 시작된 이후에는 중립의 자세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평소에 관심을 갖고, 상담도 하면 당연히 좋다.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데리고 낯선 놀이 장소에 데려가 보는 방법이 있다. 아이가 어리다면 키즈카페를 가도 되고, 좀 큰 아이의 경우 과학 캠프나 체험활동을 가는 것도 좋다. 단 종교 관련 캠프는 안 된다.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주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이제 아이가 낯선 친구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친구네 아이들과 같이 가면 절대 안 된다. 한 한 시간 후의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를 조금 파악할 수 있다. 마음이 불편하거나 아파도 절대 개입하면 안 된다. 아이가 삐지거나, 집에 가자고 하면 그냥 집에 가는 게 낫다. 이런 문제에 대해 아이도 부모도 마음에 새겨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울리는 방법, 함께 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면 괜찮다. 이제부터 익히면 된다. 생각보다 학생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이 잘 준비되어 있다. 학교 상담실이나 지역 wee센터를 이용할 수도 있고, 돈이 많다면 놀이치료 같은 걸 받는 방법도 있다. 물론 단시간에 좋아지진 않겠지만, 분명한 건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경우,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한 경우가 남았다. 어떤 아이가 선동을 해서 의도적으로 우리 아이를 따돌리고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선 첫 번째로 할 일은 무조건 아이 편에 서서 같이 분노하는 것이다. 가해와 피해가 명확하다면, 괜히 중립인 척 '너도 잘못한 거 없냐.'고 따지지 마라. 아이는 아프고 힘든데, 심판이 되지 말자.
다음으로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수 있다. 기왕이면 장기간의 객관적 자료가 있으면 더 좋다. 단 이 경우에도 아이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자. 가끔 분노에, 혹은 정의감에 전쟁을 선포하는 부모님이 있다. 내 아이가 당한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다. 나도 그렇다. 그걸 어찌 참을 수 있나. 다른 부류는 상대를 불의로 정의하고, 사회정의가 실현되지 않음에 못 견뎌하는 분들이 있다. 둘 다 틀렸다. 지금 무엇이 중한가?
중요한 건 '아이의 마음'이다. 무조건 이게 먼저다. 아이는 이 상황을 직면하기 싫을 수 있다. 아이에게 더 힘든 일도 많다며, 이겨내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정의가 실현되는 게, 상대방이 벌을 받는 게 중요한가? 한 명의 부모로서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꼭 이런 경험을 지금 바로 극복하고 이겨낼 필요는 없다. 상담이나 치유의 과정을 통해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 때, 감당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면 된다.
부모인 나는 그렇다. 난 내 아이를 지키고 보호할 것이다. 아이가 그 아이들과 부딪치는 게 힘들다면, 난 내 아이를 전학시켜 줄 것이다. '왜 피해자가 피해야 해? 가해자를 쫓아내야지.'라고 말할지 모른다. 난 가해자가 어떻게 되느냐보다, 내 아이의 마음이 더 소중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약하다. 또 쉽게 깨져 버린다. 절대 후회할 일 만들지 말자.
글이 계획보다 길어졌다. 요약하면, 무조건 아이 마음이 중요하다는 거다. 아이가 괜찮으면 괜찮은 거고, 안 괜찮으면 괜찮게 만들어 줘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