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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막 최연소 꼬맹이 대원?(完)

불의 나비 73화

by 매화연 Mar 17. 2025

 “뭐야, 이건.”


 “깜짝이야. 꼬맹이들인 줄 알았네.”


 본부로 돌아가니 대원들이 여러 가지의 풍선으로 본부를 꾸미고 있었다. 책상에는 케이크도 놓여 있었다.


 “뭐긴 뭐야, 꼬맹이들 환영식이지.”


 “이걸 도대체 언제 다 사 온 거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도헌, 꼬맹이들 오면 네가 케이크 들어.”


 선아 누나가 나에게 말했다.


 “알겠어. 아, 최이현.”


 “……왜.”


 아직도 삐져있는지 시큰둥한 목소리로 이현이 대답했다.


 “이거 하나 먹어.”


 손에 들고 있는 고급진 종이가방을 책상에 올려두며 말하자 이현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어, 저건…… 인혁 오빠가 새벽에 사 왔던 푸딩 아니야?”


 “뭐? 푸딩?!”


 푸딩이라는 단어 하나에 재깍 반응한 인혁이 눈을 크게 뜨며 하던 일을 멈추고 책상 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인혁이 모든 푸딩을 훔쳐 가기 전에 나는 황급히 종이가방에 있는 푸딩 두 개를 꺼냈다.


 “이거…… 어떻게 샀어? 분명 다 팔렸을 건데, 그것도 다섯 개나…….”


 뒤로 갈수록 점점 인혁의 목소리가 떨렸다.


 “협회 가보니까 갑자기 내일 하루 쉬게 됐다면서 내일 물량까지 오늘 판다던데. 그래서 다 사 왔지. 세 개는 남는 거니까 뭐, 먹고 싶은 사람이 먹던가.”


 나는 푸딩 두 개를 들고 가 하나를 이현에게 주었다. 방금 자신이 삐졌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었는지 이현이 해맑게 웃으며 푸딩을 소중히 꼭 쥐었다.


 “히히, 오빠 고마워!”


 이현의 토라진 마음을 풀어준 뒤 하나 더 꺼낸 푸딩을 들고 풍선을 붙이고 있는 인화에게로 갔다.


 “인화.”


 그리고 남은 푸딩 하나를 인화에게 건네었다.


 “어, 뭐야. 나 주는 거야? 고마워~”


 인화는 내가 건네는 푸딩을 받고 배시시 웃었다. 그런 인화를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인화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내 행동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듯 “아.” 말한 뒤 내 어깨를 잡고 까치발을 들었다. 자세를 살짝 낮춰주자 인화가 내 볼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쪽, 소리가 들리며 말랑한 입술의 촉각과 따스한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잘 먹을게!”


 푸딩을 들고 마저 연희를 도와주러 가는 인화를 잠시 보다가 점차 뜨거워져 가는 얼굴을 한 손으로 감쌌다.


 “준비 끝.”


 푸딩에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는 연희가 마지막 풍선을 붙였다. 그러고는 예쁘게 꾸며진 본부를 쭉 둘러보고 뿌듯해하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도헌이 형, 꼬맹이들은 언제쯤 와?”


 이후가 케이크에 불을 붙이며 나에게 물었다.


 “보육원 선생님이랑 마지막 인사하러 갔으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꼬맹이들은 각자 큰 상자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하연은 눈이 이미 퉁퉁 부어있었고 현성도 눈 밑이 붉어져 있었다.


 푸딩에 눈을 못 떼던 인혁이 재빨리 본부의 불을 끄자 나는 책상 위에 있는 케이크를 들고 꼬맹이들 앞으로 걸어갔다.


 “이, 이게 뭐예요?”


 하연은 당황하며 상자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현성은 계속 상자를 든 채 멀뚱히 우리를 바라보았다.


 “자자, 불 꺼지기 전에 어서 불어!”


 “소원도 빌고!”


 일렁거리는 촛불이 꼬맹이들의 모습을 밝혔다. 케이크와 대원들을 번갈아 보던 하연과 현성은 이내 눈을 감고 잠시 무언갈 생각하더니 함께 불을 껐다. 인혁이 다시 본부의 불을 킴과 동시에 우리는 아직 얼떨떨한 꼬맹이들을 향해 다 같이 말했다.


 “특경부에 온 걸 환영해!”


 눈을 크게 뜨고 점점 밝은 웃음을 짓는 하연의 눈에 눈물이 일었다.


 “방금도 울고 왔는데 이렇게 해주시면…… 저 또 울어요…….”


 하연의 우는 모습에 당황하며 대원들이 꼬맹이들에게로 걸어갔다.


 본부에는 새로운 인연의 꽃이 서서히 피어나고 있었다.



*



 붉은 피 냄새만이 가득한 어두운 이곳에 몇 번의 총성이 울렸다. 아직도 남은 자가 있었던 건가.


 “무슨 일이냐. 괜찮아?”


 무전기를 통해 총성을 들은 모양이신지 보스가 걱정스레 말씀하셨다.


 “아직 살아 있는 흔적이 남은 모양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스. 빠르게 끝내겠습니다.”


 나는 머리를 풀고 간단한 번개 속성으로 거슬리는 머리끈을 소멸시켰다.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총성이 들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질퍽한 소리가 발생하며 찐득한 느낌과 비릿한 향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썩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목적지에 도착하자 한 남성이 겁에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꽤나 큰 다리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 나를 향해 있는 총구.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 있으나 쏠 생각도, 그럴 용기도 없다는 걸 증명하는 몸의 떨림.


 하아, 마지막이 재미없는 녀석이라니. 어쩐지 조금 시들한데.


 유창하게 영어를 사용하며 나에게 다급히 말하는 그를 보고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라는 거야. 대충, 살고 싶으면 움직이지 말라는 건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한국어로 해. 난 영어 모르니까.”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계속해서 영어를 내뱉는 그를 보며 나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잠시만.


 ……흐음~ 조금만 재미 좀 봐 볼까? 에이, 설마 보스한테 혼나진 않겠지?


 순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에게 가까워질 때마다 그의 몸이 움찔 떨렸다.


 “어이.”


 나는 자세를 낮춰 쭈그려 앉았다.


 “나를 죽이고 싶으면.”


 그러고는 그가 두 손에 꼭 쥐고 있는 검을 잡아 들어 끌고 와 내 심장에 밀착시켰다.


 “여길 맞춰야지, 응? 어서 쏴.”


 줄줄 흐르는 식은땀이 그의 얼굴을 적셔갔다. 내가 뭐가 그리 무서운 건지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몸이 굳었는지 방아쇠에 넣은 손가락을 절대 움직이지 못했다. 유려하던 그의 언어도 두려움에 고여 이제는 떨림만이 남아 있었다.


 “뭐해, 방아쇠 당기라고. 얼른. 시간 끌어서 좋은 건 너한테도 나한테도 없다?”


 자신의 조직과 어쩌면 평생을 함께한, 평생을 약속한 사람들을 모조리 멸살시킨 놈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왜 바로 쏘지 않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떨림이 극도로 심해 총이 덜커덕 소리를 연이었다. 방아쇠 안에 손가락을 걸치고 있는 걸 보면 쏠 의향은 있다는 건데, 그냥…… 정말 두려운 걸까? 살인이? 자신이 당긴 총알 한 발에 내 심장이 꿰뚫리는 것이? 사람 목숨이 얼마나 가볍고 여린지 알게 되는 게, 무서워서?


 “……그러면 내가 뭐가 돼.”


 작게 중얼거린 말에 순간 심장이 낮고 깊게 한 번 뛰었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에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기분이 더러워지는 감각은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내 달아났다. 뭐라 다시 중얼거리는 그를 보며 단숨에 흥미가 식은 나는 혀를 한번 차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 진짜, 한국어로 말하라니까 왜 못 알아듣게 계속 영어로 말하는 거야.”


 콰광! 큰 굉음과 함께 높은 하늘에서부터 떨어진 낙뢰가 현란한 노란빛으로 어둡기만 하던 이곳에 섬광을 퍼뜨리며 그와 그가 들고 있던 총까지 완벽히 소멸시켰다. 조금 무리를 했는지 잠시 멈췄던 오른손의 통증이 미약하게 다시금 느껴졌다.


 “뭐, 어차피 한국어로 말해도 들어줄 마음은 없었지만.”


 터져나가는 몸에서 튕겨 나온 피가 내 얼굴에 튀었다. 그가 있던 곳은 자그마한 시체 조각도 남지 않고 오직 피로만 가득했다. 완벽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쓱 닦았다.


 “……아니, 여긴 미국이니까 영어로 말하는 게 당연한 건가?”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다. 이 공간에 있는 자, 정확히는 그 조직과 관련된 자들은 모두 처단해야 하니까.


 나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남은 게 있어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증거, 문서로 기록이 된 증거, 관련이 있는 물건, 그 어떤 흔적도 존재하면 안 된다.


 오로지 혈흔만 가득하다는 걸 확인한 나는 목을 가다듬고 무전기를 들었다.


 “보스, 프로젝트 0호 깔끔하고 완벽하게 마무리됐습니다~ 이만 복귀하겠습니다!”


 무전기로 보스에게 프로젝트 0호의 마무리를 알린 뒤 복귀를 위한 걸음을 옮겼다.


 임시 거처로 돌아가니 보스가 나를 와락 안으셨다.


 “아유, 기특해라! 그간 고생 많았다, 많았어.”


 귓가를 맴도는 보스의 목소리와 내 머리를 거칠게 마구 쓰다듬으시는 보스의 손길이 어째 평소보다 적적했다.


 “엑, 갑자기 뭡니까?”


 보스는 진지한 얼굴로 내 두 어깨를 덥석 잡으시더니 씨익 웃으셨다.


 “복귀 명령 떨어졌다. 한 시간 뒤에 바로 한국으로 갈 거야.”


 그 말에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근 육 년 간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지난 일들과 그 속의 감정이 한 번에 몰아치자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지금까지 수고했다. 네 덕분에 잘 끝났어.”


 “……에이, 보스가 더 수고하셨죠. 전 숟가락만 얹었을 뿐입니다.”


 나는 애써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삼킨 채 태연하게 말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의식적으로 생긴 긴장이 임시 거처로 돌아오니 드디어 풀린 모양이었다.


 “하아~ 드디어 끝났네요.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육 년 동안 이 일만 해왔는데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이 생활이 정이 든 모양입니다.”


 “하하, 그러게 말이다.”


 보스도 내 옆에 따라 앉으셨다.


 “이제, 진짜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겁니까?”


 “응. 방금 형이랑 이야기 다 끝냈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에 보고 싶은 얼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럼 드디어 엄마랑 아빠, 연희, 그리고 우리 이준이도 볼 수 있겠네요?! 어, 그러고 보니 쌍둥이 빼고 애들 다 성인 됐겠네? 와…… 시간 진짜 빠르다.”


 보스는 별 하나 없는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시며 입을 여셨다.


 “그래, 다시 만나는 날이 마침내 왔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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