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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막 익숙한 얼굴(1)

불의 나비 74화

by 매화연 Mar 19. 2025

 “아니, 나 박 협회장님 딸이라니까요? 보안팀의 천 팀장님 딸!”


 “신원 확인이 완료되면 들여보내드리겠습니다. 그전까지는 안 됩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진우와 함께 본부로 출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언제나 적막하던 회사의 로비는 무슨 이유인지 한 여성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안내데스크 앞에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뒷모습과 무척 익숙한 목소리. 문득 기억 속에 한 사람이 생각나긴 했으나 그 누나가 여기 있을 리가 없을 터인데.


 “지금 속성 회의 중이실 텐데…… 아 보스도 진짜, 좀 깨워서 같이 가지 혼자만 먼저 들어가시고…….”


 그녀가 인상을 쓰며 머리를 쓸어 넘기자 그제야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걸 예상에 맞았다 해야 할지, 빗겨나갔다 해야 할지.


 “연정 누나?”


 저 여성은 다름 아닌 박 협회장님과 천 팀장님의 첫째 딸, 박연정 누나였다.


 “어? 진짜네?”


 육 년 전 나의 삼촌과 함께 아버지가 맡기신 ‘프로젝트 0호’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연정 누나가 지금 회사 로비에 있었다. 그것도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처음 하는 일이라는 게 회사 로비에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라는 업적을 만들고 있는 채로. 등장 한 번 화려하군.


 나도 프로젝트 0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그저 비밀리에 진행되는 단숨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프로젝트라는 것과 속성에 관한 하나의 마피아 조직을 뿌리째 뽑는다는 목적으로 시행된다는 것뿐. 그것도 진짜 목적인지 아닌지는 오로지 프로젝트 실행자인 연정 누나와 삼촌, 그리고 속성 대표님들만 알고 계셨다.


 “제 얼굴을 봐 보세요! 아빠, 아 그니까 박 협회장님이랑 진짜 똑같이 생겼는데?”


 “죄송하지만, 애당초 저는 박 협회장님과 천 팀장님의 자녀분은 박연희 님 혼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 뭐요? 그럼 뭐, 저는 숨겨진 자식이라도 됩니까?”


 “뭐, 그럴 수도…….”


 “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어떻게 당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죠? 증명할 방법이 있나요?”


 “……하아, 진짜 환장하겠네.”


 아무래도 연정 누나가 마지막으로 회사를 방문한 건 육 년 전이기에 아무리 박 협회장님과 천 팀장님의 딸일지라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왜 나를 모르지? 어떻게, 아니 애초에 이럴 수가 있나?”


 정작 본인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지만.


 “연정 누나~!”


 안내데스크로 걸음을 옮기며 손을 크게 흔들면서 진우가 누나를 불렀다.


 “이도헌 님, 서진우 님?”


 진우의 외침에 누나는 놀라며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야 이도헌, 서진우! 이 자식들, 왜 이렇게 많이 컸어!!”


 누나는 밝게 웃으며 우리의 머리를 격하게 쓰다듬었다. 활기찬 모습은 여전하네.


 “그렇다면 이분이 진짜 박 협회장님과 천 팀장님의……?”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직원이 어리둥절해하며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를 꺼냈다.


 “네, 첫째 따님입니다.”


 사실을 알게 된 직원은 연정 누나에게 몇 번이고 연신 사과를 했다. 누나는 사과할 일이 아니라면서 괜찮다고 거의 울먹거리는 지경까지 이른 직원을 달랬다.


 한 차례 작은 소동이 나름 순탄히 지나가자 그제야 우리는 온전히 누나를 맞이할 수 있었다.


 “누나, 어디 먼저 갈 거야?”


 “엄마랑 아빠, 그리고 속성 대표님들은 지금 회의 중이시니까…….”


 진우의 말에 누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우리를 보고 씨익 웃었다.


 “너희 본부로 출근하는 길이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정 누나가 나와 진우의 어깨에 한 팔씩 걸쳤다.


 “그럼 너희 따라갈래! 같이 가도 되지?”


 “당연하지.”


 본부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도착을 알림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히자 누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다른 애들도 다 특경부지? 선아랑 인혁, 인화, 연희, 쌍둥이, 그리고 이준이도.”


 “응, 맞아.”


 “오랜만에 만날 생각하니까 좀 떨리네. 와, 나 지금 심장 진짜 빨리 뛰어.”


 연정 누나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짧게 심호흡을 했다.


 “일은 다 마무리된 거야?”


 내 물음에 연정 누나는 뿌듯한 웃음을 짓고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브이를 만들었다.


 “완벽하게 마무리됐지.”


 “다친 곳은? 없어?”


 “어, 뭐…….”


 누나는 옷을 살짝 걷어 오른쪽 손목을 보여주었다. 누나의 손목에는 피부가 조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꼼꼼히 붕대가 감겨 있었다. 옷을 끝까지 걷지 않아서 그렇지 오른팔 전체에 붕대가 감겨 있는 듯해 보였다.


 “다른 상처들은 이미 다 나았고, 이거 말고는 딱히 없어. 이것도 거의 다 나았고.”


 오른팔을 빼면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문제는 오른팔이 태연한 누나의 말에 비해 훨씬 심각하게 다친 것 같다는 거지.


 “왜, 누나 걱정했냐?”


 “아니.”


 걱정했지. 자칫하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임무라는 걸 잘 알고 있는데 걱정이 안 될 리가.


 “자식이, 걱정 많이 했으면서 괜히 틱틱대긴.”


 내 볼을 쭉 잡아 늘리며 누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느 날 인혁이 문득 연정 누나에게 물었었다. 고유의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강하냐고.


 ‘엉? 고유의 능력이 없는데 왜 이렇게 강하냐고? 야 인마, 내가 고유의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번개 속성 자체가 내 고유의 능력인 거야.’


 인혁의 물음에 연정 누나가 이렇게 답변하여 한동안 인혁의 부러움과 존경을 한몸에 받았었다.


 연정 누나에게는 속성을 사용하는 자신만의 고유의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위험하고 중대한 작전에 파견될 정도로 강했다. 고유의 능력이 없는 경우는 가끔 봤어도 고유의 능력이 없으면서 웬만한 사람보다 강한 사람은 연정 누나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아버지가 규모가 크고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길 수 있을 만큼 누나를 믿고 계시는 것이고.


 “너희들은, 잘 지냈냐?”


 “우리야 잘 지냈지.”


 “……분명 열아홉 살 꼬맹이들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다 큰 거지.”


 우리를 빤히 바라보며 누나가 중얼거렸다.


 누나의 말에 마침표가 찍히기 무섭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이준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스물아홉, 선아는 스물일곱, 도헌이랑 진우랑 인혁이는 스물다섯, 인화랑 연희는 스물넷, 그리고 쌍둥이는 열일곱 살이야.”


 이준 형은 꼬맹이들에게 대원들의 나이를 알려주고 있었다. 하연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형을 바라보았다.


 “그럼 오빠랑 저랑 열네 살 차이네요?”


 악의 없는 순수한 흥미가 현실을 끄집어내어 빼도 박도 못하게 철저히 각인시켰다.


 “아…… 그, 그치. 열네 살…….”


 꼬맹이들과의 나이 차이를 새삼 느낀 이준 형은 애써 허탈하게 웃어보았다.


 “최이준!!”


 연정 누나의 큰 외침에 본부에 있던 꼬맹이들과 이준 형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전 13화 제9막 최연소 꼬맹이 대원?(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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