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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막 익숙한 얼굴(3)

불의 나비 76화

by 매화연 Mar 24. 2025

 “저 왔습니다~!”


 연정 누나가 회의실 문을 힘차게 열며 먼저 들어갔다. 박 협회장님이 연정 누나에게 달려가 누나를 와락 안으셨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우리 조카님 왜 이렇게 많이 컸어? 못 알아볼 뻔~”


 누나가 속성 대표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회의실 안으로 뒤늦게 들어온 나를 발견하신 삼촌이 내게로 다가오셨다.


 “도헌이, 잘 지냈냐?”


 삼촌은 내 머리를 헝클며 말씀하셨다.


 “아, 네. 오랜만이에요, 삼촌. 임무가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아유, 이쁜 것! 아무래도 넌 형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인 모양이다.”


 나의 양볼을 늘어트리시고는 삼촌이 호탕하게 웃음을 지으셨다.


 “헛소리하지 마라, 이태혁.”


 연정 누나와 대화를 하고 계시던 아버지가 삼촌을 노려보시며 말씀하셨다.


 “왜, 맞잖아? 아버지를 닮아서 싸가지 없는 형을 우리 이쁜 도헌이가 닮았을 리가-”


 파악!


 “악!!”


 순간 여유로운 목소리로 약 올리게 말씀하시는 삼촌의 뒤통수를 아버지가 때리셨다. 꽤 세게 때리셨는지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아오, 아파라……. 형님, 누님들! 보셨죠? 형이 저 때리는 거! 아, 누가 형 좀 뭐라 해주십시오! 이담 누니이임!”


 삼촌은 뒤통수를 거칠게 문지르시며 말씀하셨다.


 “태혁아, 똑바로 봐봐.”


 엄마가 아버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덥석 잡으시고 삼촌에게 도로 시선을 옮기셨다.


 “부자가 똑 닮았잖아.”


 “맞습니다. 도헌이 이 대표님이랑 거의 도플갱어 급입니다. 보스도 아시잖습니까? 이번엔 보스가 틀리신 듯합니다?”


 “연정이 너까지……!”


 삼촌은 배신감을 느낀 듯한 표정으로 누나를 바라보셨다. 육 년 전과 다름없이 삼촌도 여전히 활기차셨다.


 “어? 우리 딸 팔이 왜 그래?”


 박 협회장님이 언뜻 드러난 연정 누나의 오른팔에 붕대가 감아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별거 아니야. 그냥 살짝 긁혔어.”


 누나는 오른팔을 황급히 뒤로 숨기며 말했다.


 “태혁아 진짜냐?”


 “아…… 그게, 실은…….”


 “보스!!”


 중간에 끼어든 연정 누나의 외침에 삼촌의 목소리가 묻혔다.


 “아빠가 딸 거짓말도 못 알아챌 거라고 생각한 거냐? 다 티 난다.”


 삼촌은 연정 누나와 박 협회장님을 한 번씩 번갈아 보시다 누나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진중하게 꺼내셨다.


 “삼 개월 전에 프로젝트 0호를 진행하던 도중 제가 방심한 나머지 연정이 크게 다쳤습니다. 자칫하면 오른팔 못 쓸 정도였습니다. 아마, 후유증이 남아 있을 거예요. 상처도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고요. 죄송합니다. 다 제가 부주의했던 탓입니다.”


 “그게 왜 보스의 탓입니까, 제가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그렇지.”


 누나는 갑자기 어두워진 회의실의 분위기를 살피다 더욱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처럼 즐거운 날인데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렇게 다운됐습니까! 저 진짜 괜찮으니까 다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누나는 속성 대표님들을 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그보다 못 본 사이에 애들이 너무 많이 컸습니다. 특히 쌍둥이!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열한 살이었는데 벌써 고등학생이잖아요. 진짜 엄청 쪼그맸었는데~”


 지금보다 더 어렸던 쌍둥이를 기억 속에서 꺼내는 듯 연정 누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 그리고 이 대표님. 저 특경부의 대원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래. 이태혁한테 들었다.”


 누나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다.


 “아이, 끝입니까? 이 대표님 반응 많이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삼촌이 연정 누나의 어깨에 팔을 두르셨다.


 “아유 연정아, 기대할 사람한테 기대해야지. 저 양반은 고지식한 데다 무뚝뚝하고 꽉 막혀서 답답하고 더럽게 깐깐…….”


 말씀 중간에 아버지가 노려보시자 삼촌이 급히 말을 멈추고 아버지의 눈치를 보시며 결국 끝을 맺지 못하였다.


 “예,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삼촌은 두 손을 공손하게 앞으로 모으고 은근슬쩍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셨다.


 “특경부 월급이 워낙 많이 세잖습니까? 이미 다~ 알고 왔습니다!”


 특경부의 퇴근 시간은 이십삼 시이다. 일반 직장인들보다 다섯 시간은 더 늦게 퇴근하지. 그렇기에 야근 수당이 많을 수밖에.


 물론 퇴근 시간을 정한 건 속성 대표님들이 아니었다. 대원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직접 정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이니 최대한 자리를 지키게 있는 것이 좋으니까. 교대를 하며 밤낮으로 자리를 지키는 협회 경찰이 있다지만 시민들의 신뢰를 받는 것은 특경부였다. 그 기대에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부응해주고 싶었다.


 “말만 퇴근이 늦는 거지 정확히는 퇴근이 늦은 게 아니라 야근을 하는 거니까. 야근 수당을 제대로 챙겨줘야지.”


 “아, 그래! 아니 무슨 퇴근이 밤 열한 시라면서요? 이 정도면 특경부 이 대표님한테 협박받는 거 아닙니까?”


 “저 인간 완전 악덕 사장이지, 악덕 사장이야. 도헌아, 그냥 확 신고해 버려라.”


 연정 누나와 삼촌이 호탕하게 웃으며 장난 섞인 말을 꺼내었다.


 “……그,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한 협회장님의 집무실에 다녀와도 괜찮을까요?”


 문득 사부의 이야기를 꺼내는 장난스러웠던 누나의 목소리와 밝은 웃음이 어느샌가 씁쓸함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래, 기다릴 테니 편히 갔다 와.”


 박 협회장님의 말을 듣고 누나는 사부의 집무실로 향했다. 많이 심란했을 테지. 그것도 삼 개월 전 임무 마무리 단계에서 갑작스럽게 오 년 전 일을 알게 되었으니.


 회의실을 나가는 주먹을 꽉 진 누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오 년 전,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나는 단 한 번도 사부의 집무실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사부의 집무실에 들어가면 고스란히 남아 있을 사부의 흔적과 익숙한 향기에 애써 꾸역꾸역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던 추억들이 다시금 올라와 억제하고 있는 감정들을 울컥 토해낼 것 같았다.


 그러면 안 되니까, 난 절대로 들어가선 안 된다.


 “이만 먼저 가자, 형.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물론 도헌이도 데리고.”


 나를 왜 데리고 가시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오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을 때 삼촌의 말에 잠시 고민하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러지.”


 결국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나는 속성 대표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협회장 집무실을 나갔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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