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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막 익숙한 얼굴(4)

불의 나비 77화

by 매화연 Mar 26. 2025

 “회의에서도 말했다시피 프로젝트 0호는 완벽히 마무리됐어. 그 조직과 관련된 자들은 모두 죽었고, 관련된 증거나 흔적도 다 처리했어. 연정이가 작은 시체 조각도 안 남겨두고 깔끔히 소멸시켰을 거야.”


 “그래. 육 년 동안 타지에서 수고 많았다.”


 “응, 내가 좀 많이 수고했지. 형은 진짜 나한테 평생 감사해야 돼. 하아~ 임무 수행하느라 죽는 줄 알았네…….”


 삼촌은 몸에 힘을 쭉 빼시며 소파 뒤에 편하게 기대셨다.


 “……인호 형님 일은 왜 이제야 알려준 거야?”


 사부의 이야기를 꺼내는 삼촌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만약에 내가 형님 안부 안 물어봤으면 프로젝트 끝내고 한국으로 복귀했을 때 알려줄 생각이었지?”


 아버지는 언제나 그러셨던 것처럼 아무 말 없이 삼촌의 말을 들으셨다. 삼촌은 소파 뒤에서 등을 떼시며 이어 말씀하셨다.


 “알아 나도. 형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어쩌면 형 판단이 옳았을 수도 있겠지. 프로젝트 0호는 목숨이 오고 가는 위험한 임무니까,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해 자칫 방심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 삼 개월 전에 연정이가 크게 다친 것도 그 이야기 듣고 난 직후였으니.”


 점차 문장의 끝으로 갈수록 삼촌의 목소리가 잠겨갔다.


 “그런데 형, 다른 사람 일도 아니고 인호 형 일이잖아. 그냥…… 조금만 더 빨리 알려줬으면 적어도 이 정도로는…….”


 끝내 말을 끝맺지 못하시고 목소리가 완전히 잠긴 삼촌은 고개를 푹 숙이셨다. 그것도 잠시, 다시금 미소를 머금으시며 삼촌이 고개를 드셨다.


 “아 됐다. 잊어버려. 그냥 잠깐 하소연한 거야, 하소연.”


 자세를 고쳐 앉으시며 삼촌은 주제를 자연스럽게 돌리셨다.


 “그나저나 내가 형한테 이야기 듣고 실군단에 대해 조금 생각해 봤거든? 근데 왜인지 모르겠는데 옛날에 이태연이 벌였던 일이 계속 떠오르더라고.”


 여전히 낯선 그 이름에 무의식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고모 말씀이세요?”


 나는 단 한 번도 고모를 직접 뵌 적이 없었을뿐더러 그분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엄마도 고모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진 적이 없으셨다. 내가 아는 건 그저 고모의 아들인 꽤 친한 나의 사촌 형뿐이었다.


 열두 살 때, 고모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고모의 장례식 때 영정사진을 통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모를 보았다. 그제야 지금 내 앞에 사진으로 모습을 보이신 분이 나의 고모라는 사실만을 안 채로.


 “어, 네 고모. 혹시 네 아빠한테 걔 이야기를 못 들었어?”


 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그저 슬쩍 아버지의 눈치를 보았다. 나의 반응을 본 삼촌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씀하셨다.


 “뭐야, 설마 했는데 진짜야?”


 아버지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기시는 삼촌이 잠시 아버지를 바라보시더니 이내 답답하신 듯 한숨을 푹 쉬셨다.


 “아니 형, 형이 그걸 눈치를 못 챘을 리가 없잖아. 알고 있었으면 적어도 도헌이한테는 바로…….”


 삼촌에게 눈길을 주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시자 삼촌이 느닷없이 말을 멈추셨다.


 “하아…… 예예,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시던가요~ 형 성격 알면서 안 그래도 바쁜 우리 조카님 시간 뺏은 내 잘못이지.”


 삼촌은 끝으로 갈수록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혼잣말하듯 점차 중얼거리셨다.


 “아, 나 형한테 사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거 있는데.”


 고개를 슬쩍 들어 천장을 바라보시며 삼촌이 말씀하셨다.


 “네가 언제 공과 사를 나눴냐. 그냥 물어봐.”


 “하아? 내가 얼마나 공과 사가 철저한 사람인데.”


 삼촌의 시선이 천장에서 아버지에게로 옮겨 갔다.


 “어련하겠나?”


 “형은 진짜…… 사람 짜증 나게 하는데 재주 있는 거 같아.”


 “너만 하겠냐.”


 “아, 진짜!”


 잠시 아버지를 노려보시던 삼촌이 이내 못 이기겠다는 듯 손을 내저으시며 다시 소파 뒤에 등을 기대셨다.


 “그래서, 물어볼 게 뭔데.”


 아버지의 물음에 삼촌은 짧은 한숨이 섞인 목소리를 조용히 내보내셨다.


 “다은이는, 잘 지내?”


 아버지는 삼촌을 한 번 일별하셨다. 항상 표출하시던 활기는 온데간데없이 떨리는 입꼬리를 올리신 삼촌의 모습만 남아 있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사무친 그리움.


 “형이 모르면 누가 알아.”


 비열한 죄책감.


 “잘 지내고 있겠지.”


 “형.”


 그리고, 기어코 이성을 잿더미로 만든 복수심.


 “나 회의 전에 태윤이 만났어. 다은이 별 방문, 어제였다며?


 밤하늘의 관리자는 주기적인 기간에 맞춰 여행자의 별을 방문한다. 별 방문을 통해 여행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대게 한 달에 한 번씩이다.


 “그거 좀 알려주면 덧나? 그냥 잘 있다 한마디 해주면 끝날 걸 도대체 왜 그러는데!”


 삼촌이 언성을 높이시자 아버지가 삼촌에게서 시선을 거두셨다.


 “……와, 대표라는 직책 진짜 싫다.”


 삼촌의 눈길이 금색으로 ‘대표이사 이태호’라 적힌 검은색 명패로 향하였다.


 “나 미국 지사장 안 해.”


 억지로 올린 삼촌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어차피 지금 임시 지사장 한국인이잖아. 귀찮게 영어 쓰면서 대화 안 해도 되겠네. 속성 보유자니까 말조심 안 해도 않아도 되고. 형이 심사숙고해서 친히 직접 뽑은 그 임시 지사장 나보다 더 어리고, 유능하니까 나 같은 건 필요 없을 거 아니야? 난 못해 먹겠거든. 지사장이니 대표이니 별 대수도 아닌 이름값 달고 그깟 역겨운 원칙 지키면서 답답하게 사는 거.”


 “연다은 잘 지내. 네가 질투 날 정도로 별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평소보다 한층 더 깊어진 아버지의 눈동자가 삼촌을 주시하였다.


 “그러니까 적당히 해라, 이태혁.”


 그때, 누군가 밖에서 집무실의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외삼촌, 저예요. 윤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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