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운동을 마치고 나는 체육관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거울 앞에 얼굴을 가까이 한 뒤, 머리를 뒤집으며 정수리와 M자 탈모를 점검했다. 큰 변화는 없는 상태였지만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졌길 바랐다. 그때 나의 이런 간절한 모습을 바라보던 한 소년이 있었다.
“어 아저씨. 머리도 머리인데 뱃살도...!”
같이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초등학교 5학년 생 K 군이었다. 그 나이 때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눈빛부터 장난기가 충만한 그 아이는 매일 심각하게 거울을 쳐다보는 나를 놀리는 것이 어느덧 취미가 되어 있었다.
보통은 ‘탈모르파티’ 같은 유치한 노래를 부르거나 스파링 중 매트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나에게 건네는 등 그의 관심사는 내 머리카락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뜬금없이 내 복부로 표적을 바꿔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둥근 배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거울 앞에 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세를 옆으로 바꾼 뒤 복부로 시선을 돌렸다. 복부에는 K군 말대로 동그랗게 불룩 튀어나온 내 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착 달라붙는 주짓수용 래시가드 때문에 내 뱃살은 오히려 더 도드라져 보였다.
뱃살이라니, 탈모도 탈모지만 뱃살은 어느새 이 정도까지 차오를 줄 몰랐다. 어린 시절부터 마른 편이었기에 뱃살은커녕 온몸에 살이 모자랐던 나였다. 때문에 복부가 이렇게 둥그렇게 변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의미 없이 내 배를 어루만졌다.
“아저씨 그게 그렇게 만진다고 빠지는 게 아니에요.”
눈치 없는 꼬마 녀석이 또 깐죽거렸다. 인내심에 스크래치가 난 나는 냉큼 그 녀석에게 달려가 백 포지션을 잡은 뒤, 리어 네이키드 초크를 선물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내 탈모와 뱃살이 달라질 것은 없었다. 켈록거리는 K군을 풀어준 뒤, 나는 바닥에 대자로 뻗어 또 자괴감에 빠졌다.
“아니 이게 어쩌다가... 탈모도 그렇고 뱃살까지 이렇게 나왔다니”
이십 대 때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일이었다. 매일매일 술을 먹고 불규칙적으로 움직여도 뱃살만큼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큰 덩치의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뱃살을 보면서 괜한 부러움마저 느낀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과신한 대가는 삼십 대를 맞이하며 갑작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더욱 깜짝 놀랄 만큼...
체육관에서 나온 나는 편의점에 들렀다. 주류코너에서 루틴처럼 꺼내던 아사히 맥주캔을 잠시 집었다가 놓았다. 술이 복부비만에 치명적이란 사실이 머릿속에 번쩍 스쳐갔다. 나는 그 옆에 있는 단백질 음료 하나를 집은 뒤 계산대로 향했다.
가게로 나온 뒤,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는 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어제까지 아무 이상 없던 무릎이 욱신거렸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무릎 안쪽에서 저릿한 기분이 맴돌았다.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기에, 운동을 할 때도 무릎보호대를 매일 하며 운동을 하는 나였다. 스파링을 할 때도 과격한 동작은 피했기에, 무릎이나 관절이 아플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 안되는데... 내일 바로 병원 가봐야겠다”
관절 부분은 한 번 다치면 복구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었기에 갑자기 찾아온 찌릿한 고통이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때문에 아무도 없는 길에서 혼잣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뱃살에 이어 무릎까지 이러니 한동안 없었던 스트레스가 다시 머릿속에서 피어올랐다.
운동을 매일 하는데도 이렇다니... 괜한 억울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상황에 운동마저 못하면 몸이 더 안 좋아질 텐데... 여러 나쁜 감정이 교차하던 찰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한 대학교 친구인 'I' 였다. 마침 하소연할 친구가 필요했던 순간이었기에 냉큼 전화를 받았다.
“I야, 나 나이를 먹긴 먹는 것 같다. 오늘 체육관 가니깐 뱃살이 얼마나 나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집에 가는 길인데 무릎이 왜 이렇게 아프냐... 진짜 몸이 다 고장 났다 고장 났어!”
하지만 그 말을 들은 I는 콧방귀를 뀌며 내 걱정을 맞받아쳤다.
“야. 닥쳐! 나는 오늘 비뇨기과 가서 전립선염 치료받고 왔다! 어찌나 수치스럽던지... 어휴 진짜 죽고 싶다!”
예상치 못한 병명에 나는 참지 못한 채 웃음을 터트렸다. 빵 터진 내 목소리를 들은 I는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으며 그의 화를 더 돋우었다.
“그래 뱃살 좀 나오고 무릎 아픈 게, 오줌 쌀 때 아픈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아 미치겠다 진짜~! 우리 어떡하면 좋냐!”
그렇게 나는 살짝 우울했던 귀갓길을 친구와의 한탄과 웃음으로 채우며 또 터벅터벅 나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