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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공부의 치명적 단점

엄마도 사람이다보니..

by 랑애
비학군지에 살다보니 유명 학원가가 멀어서
내가 엄마표를 하게 되었나?


라는 의문이 가끔 나에게 든다.


물론 그 이유도 있겠지만 둘이 해볼만하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내 아이의 장단점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우리는 워낙 어릴때부터 마주 앉아 워크북을 같이 푸는 일에 익숙했다. 둘째 아이와는 그러질 못했는데 첫째 아이와는 둘만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렇다고 뭐 대단하고 굉장한 워크북을 푼 건 아니었지만, 그저 함께 책 읽고 그림 그리며 만들기, 종이접기 등을 같이 해주었다. 아이는 그 시간도 '놀이'라고 느꼈는지, 일단 앉으면 한 두 시간을 훌쩍 넘길 만큼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러다보니 이런 습관이 자연스레 학습으로 옮겨갔다. 때문에 나는 아이의 학습적인 장단점도 파악하게 되었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학교 공부는 잘 따라가니 아직은 굳이 보낼 필요가 없다는 마음도 있었다. 어쩌면 공부정서를 생각해 본격적으로 시작할 나이가 안됐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표의 장점은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차치하고 엄마표 공부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엄마의 감.정.기.복.


이상하게 아이는 기복이 없는데 엄마인 내가 다 귀찮은 날이 있다. 그럴 땐 양을 줄여주거나 독서를 하라고 떠넘기기도 한다. 아이도 이런 흐름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공부양을 줄여달라고 보챈다.


문제는 하루 이러고 나면 다음 날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 두 번 감정기복에 휘둘리다보면 결국엔 장기전으로 넘어가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엄마 혼자서 시작한 감정기복인데 아이까지 구렁텅이로 끌고가는 셈이다.


엄마가 흔들리면 엄마표가 통째로 흔들린다.


때문에 감정기복에 흔들리지않도록 늘 애써야한다. 몇 번 겪어보면 내일도 영향이 간다는 걸 머리로 알기에 자제하곤 한다. 정말 몸이 힘든 날은 만사 귀찮지만 아이에게 애써 티내지 않을 때도 있다.


나는 뭐 이렇게까지 애를 쓰고 있지?
신경쓸수록 나만 늙는데 학원보내면 편하지.
정작 아이는 내 정성을 알아주지도 않을 걸?


공부는 또 해서 뭐해?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뭐라도 해서 먹고 살겠지. 행복하려고 태어난 아이한테 이깟 공부가 다 뭐라고.


고백하건데,

나는 가끔 이런 생각들을 한다.

아니 약간 자주.

.

.

.


그래도 그 끝엔 항상 공부는 하는데까진 해봐야 한다는 결론이다. 학생으로서 어쩔 수가 없다. 벌써부터 공부를 안해버리면 남은 학창시절이 너무 지옥일테니까. 하나도 못 알아듣는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는건 그 자체로도 고문이 될 것이니.


나는 몇년후에는 자기주도학습으로 모든걸 아이에게 넘겨줄 생각이다. 아니 그전에도 아이가 원하거나 필요하다면 엄마표는 손을 털 생각이다. 하지만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고생 자녀도 옆에서 채점해주고 영단어시험도 도와준단다. 아, 어떤 식으로든 서포트는 끝나지 않는가 보다. 이래서 엄마의 역할은 죽어야 끝난다고 했던가.


칠순이 넘은 우리 엄마는 나에게

넌 내가 죽으면 무덤 앞에 와서
"엄마, 나 배고파.
밥차려주고 다시 무덤으로 들어 가."
라고 할 애야.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그렇게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살던 내가 결혼해서 자식을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엄마표로 공부까지 시키고있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러고 보면 꼭 공부뿐만 아니라 엄마 손이 안간 게 하나도 없다. 아이에겐 태어나서부터 모든 게 다 엄마표다.


약간 논지를 벗어난 감이 없진 않지만

어쨌든 오늘도 난 엄마표를 위해 감정기복을 추스른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표,
아니 모든 엄마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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