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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ermelon Aug 08. 2024

대표님께 돈 뜯기

대표님 방에 올라간 광고대행사 차장 나부랭이

약속도 잡지 않고 빼꼼 올라갔다. 대표님 방에.


약간은 떨려하는 나와 달리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중앙에 놓인 테이블로 옮겨가 눕듯이 얼굴을 테이블 위에 묻으며 엎드려 "뭔 일이야?" 물으신다.

그 느림에 괜히 편안했다.


가져온 폴더를 열며

"제가 처음엔 저희 팀 사원들이랑 시작한 세션인데, 그 친구들 동기들이 놀러 오면서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어서 간식비 지원받으려고 올라왔어요."


AE로 일하는 데 있어서 도움되는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서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딱 30분짜리 세션이에요. 2주에 한 번 정도 하려고요.

제가 가르치거나 하는 건 아니고, 저는 MC 보면서 서로 실수도 공유하고 자랑도 좀 하고 그래서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이요.


지난주 주제는 광고주 OT였는데, Y사원이 자기는 광고주 OT가면 로비에서 주차등록표 사진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대행사 어디가 왔나 보려고.


한 번은 제가 급한 광고주 전화가 와서 도중에 나갔는데, 그날 주제가 기획회의였거든요. 자기들끼리 웅성웅성 M사원의 팀장이 만든 덱을 노트북에 켜놓고 보며 공유하고 있더라고요.


촬영날 AE가 해야 할 일을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과자 브랜드 촬영장에 경쟁사 과자가 깔려있고, 우리 브랜드 음식을 빅모델이 섭취해야 하는데 현장에 냉장고가 없어 그 아침에 아이스박스 사러 가고, 미술감독이 미적감각을 십분 발휘해 조합해 놓은 가구를 한창 찍다가 광고주 임원이 도착하자마자 저거 우리 브랜드 컬러칩이랑 안 맞는데라는 말에 결국 CG로 다 다시 잡아야 했던 이야기가 그 어떠한 이론보다 기억에 남잖아요.

내일 첫 촬영 간다며 뭘 하면 좋을까요 물어보는 신입사원에게 "넘어지지 마, 촬영장에 생각보다 선이 많아" 말해주는 동료가 소중하잖아요.


우리는 모두 달라서

그래서 다들 필연적으로 잘하는 것이 달라서

제가 사원들보다 특별히 더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 같은 일을 각자의 방법으로 해내고 있어서 이 세션을 운영하고 싶다고.


사원들이 섬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이를 핑계로 얼굴 트고, 서로에게 더 쉽게 업무요청했으면 좋겠다고.

나만 이렇게 힘든가? 나만 못하나? 내가 부족한가? 혼자 외로운 신입생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탕하게 웃으셨다.

"너 재미있네."


그 한마디에 주어진 세션 간식비.

큰돈은 아니지만 예산에 없던 돈이다.

이번달은 세션 간식비를 모아 다 같이 점심 회식을 했다.

그렇게 점조직이 선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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