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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업 Oct 24. 2024

시어머니의 갑질 이후에 찾아온 무기력감

반드시 이겨내리라


시어머니 카톡을 읽고 생각에 잠겼던 나.


첫째 출산 하고도 시댁 요구에 최대한 맞춰왔는데...


지구상에서 혼자만 애 낳았냐고...

(지구상에서 혼자 손주 있으신 분 어디 가심?!)


며느리 성품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라는 둥...

(본인 성품에 실망은 안 하셨는지?!)

(저는 어머님 성품에 이미 실망했습니다만...)



생각에서 깨어 앞을 바라보았다.


황당한 이야기들이 여전히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아이들이 잠든 집 안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




동공지진이 난 채로 내 옆에 앉아있는 남편.


옆에 앉아있던 남편에게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고


몇 마디 했지만, 충격이 컸던 탓인지 싸울 힘도 없었다.

(싸울 대상도 없고 ^ㅗ^)







결혼 전, 나는 고부갈등 없는 삶을


누구보다 갈망하던 사람이다.




평소 연배가 있는 분들과도 잘 지내고,


MZ세대지만 어른 말씀을 잘 수용하는 편이었기에


고부갈등 없이 혼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허황된 꿈을 꿨다.

(특별한 시댁과 시어머니를 만날 줄은 상상을 못 했다.)

(쏘 스페셜~~^ㅗ^)



내가 쓰고 있는 글에는 굵직한 사건들만 기록이 되지만,


이곳에 남길 수 없 자잘 자잘하지만


복잡 미묘한 감정을 남길만한 일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과장된 비유이긴 하지만, 비유마저 숨 막히네...)

(크헙)




그런 순간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참아오던 나에게 시어머니가 욕을 할 일인가?

(내가 했어야 맞는 듯?!)

(지금부터라도 욕 연마를 시작해야 하나?!)

(XXXX!!!)

(?!)







답답했다.


지금까지 참아왔는데 말할 상대가 없어서


싸울 수가 없다니.




어린 시절부터 싸움을 싫어하고,


갈등상황을 만들지 않기로 유명한 나였지만,


이제는 싸워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탄전이나 험한 말싸움은 아니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잘못 쌓은 탑에 무게가 더해지니, 말을 안하고는 견딜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전화나 카톡으로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가 공손해서가 아니었다.


대학시절,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배울 때,


부정적인 내용 전달은 면대면,


즉 만나서 하는 게 제일 좋다고 배웠다.

(문자나 전화는 표정이나 제스처 전달이 되지 않기에)

(오해 생길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학습 내용 적용하는 모범생 인간 ^^)






만날 날이 언제 찾아오려나...


처음으로 시댁 만날 날을 기다렸다.

(아 두렵고 설레는 이 기분^-^)




그런데 그 카톡 사건 이후,

어머님은 우리 집에 찾아오지 못하셨다.

(뜻밖의 수확)

(얼쑤!)

(부끄러움은 어머님의 몫^-^)

(부끄러움을 느끼시긴 하셨으려나?!)

(근데 싸워야 하는데 언제 만나려나...)








카톡을 읽고도 내 감정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일 이후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아이를 키우며 시댁의 잦은 만남과 연락에


늘 시댁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꿔왔던 나지만,


코로나 시국에 친구도 누구도 못 만나는 상황에서


시댁과의 교류만 있다 보니 점점 힘이 빠졌다.


'독립'에 대한 꿈도 멀어져 가는 기분이었다.

(항상 나만 혼자 외딴섬에 둥둥)




게다가 내가 부당함을 견디면서도 맞춰오던 시댁에서


나에게 하면 안 되는 말을 뱉는 순간,


내 마음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깨져야 할 사람들은 안 깨지는 것이 포인트 ^^)

(조만간 깨부숴 드릴게요?!)

(쨍그랑)






여전히 신생아인 둘째.


둘째가 밥시간이 됐다고 목청 높여 운다.


멍하니 수유의자에 앉아있던 나.


우는 아이를 보고도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다.


"뿌에에에엥!!!!"

(밥 내놔라 애미야!!!!)


"으헤에헤헤에에ㅔㅇ"

(배고프다고오오오!!!!)



내 앞을 서성이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첫째까지


뿌에에엥 울며 쌍나팔이 울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

(큰애 수유할 때는 이런저런 말도 많이 해줬는데)

(둘째 수유하면서는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시. 댁. 독. .)

(그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독립투사 탄생할 기세)




수유가 끝나고 둘째는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여전히 생각에 잠겨 아이를 품에 안은 채로


한참을 앉아있었다.




큰애가 밥 달라는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겨우 밥만 챙겨줬다.






나는 누구보다 밝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반복되는 시댁의 갑질에


아이들의 최소한의 필요만 채워주는 엄마로 변해버렸다.

(거의 사오정급 엄마 ^ㅗ^)

(한 두 번 불러서는 답이 없음 ^^)

(켈룩)




이런 생활이 6개월 이상 지속됐다.


그렇게 나는 무기력감에 빠진 줄도 모르고


애 둘 육아에 치여 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속된 말로 존버했다.)





그렇게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 전화를 받은 나는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




커밍 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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