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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림 Oct 25. 2024

문학적 장치로서 모빌리티

김숨 「막차」

09편 연속


  김숨 작가는 한자리에서 뿌리내려야 할 나무에 이식만큼 모진 시련은 없다고 했다. 작가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바로 뿌리뽑힌 나무다. 나무는 약자들을 비유한다. 교통 모빌리티의 이동성은 사회 취약계층의 불안정한 삶의 메타포다. 「막차」의 고속버스는 약자들의 실존적 삶을 형상화하는 동시에 죽음으로의 여정을 재현하였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마냥 그렇게 흔들리면서 정주하지 못하고 부유하듯 실려가는 것만 같은… 빈 의자들과 함께.”(24쪽) 순옥 부부가 살아온 인생길은 요동치는 버스 차체만큼이나 흔들렸다.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가족 집단의 혼란은 전 사회의 혼란이나 다름없다. 순옥 가족의 대립, 소통의 부재는 저항할 수 없는 외부의 힘이 작용한 결과다. 이 외부적인 힘은 궁극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힘이다. 세상과 결탁하지 못한 남편은 일평생 사회의 변두리에 방치되어왔다. 아들 상훈은 출판사 영업사원으로 전국을 떠돌지만, 안정된 생활, 안정된 직장은 요원하다. 

  불공정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는 한 능력주의 사회는 결코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지 못한다. 낙하산 인사, 주가조작, 학벌 위조, 세금 포탈, 뇌물수수 등의 부조리는 사회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다. 사회 주권 권력은 불법을 자행하고, 범죄를 은폐하거나 법망을 피해 처벌을 면한다. 순옥 가족과 같은 상대적 약자는 그만큼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사회는 처벌받지 않는 대상자로 인해 좌절과 분노로 흔들린다. 일정한 시간에 맞춰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대중교통처럼 성실하게 살아온 순옥 가족의 삶은 휴게소에 멈췄다. 소설에서 휴게소는 환승구간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움직이는 공간이다. 따라서 「막차」에 배치된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순옥은 갈대 줄기처럼 흔들리면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인물이다. 그녀는 아들과 손녀딸들의 미래를 짊어진 채 척박한 인생 행로를 내달려야 할 책임이 있다. 환승구간에서 멈춘 그녀는 삶의 길목으로 이동할 터이다. 태동기부터 문학은 약자의 삶을 싣고 달려왔다. 문학의 렌즈에 담긴 이동 경관은 남루하고 헐벗고 때로는 비루한 풍경을 반추한다. 희망은 헐벗은 이동 경관에서 움튼다. 거친 삶으로의 질주, 그 중심에 다수의 순옥이 있고 김숨 작가가 있다. 


06-10편 마침.


<참고문헌>


1) 김숨, 「막차」, 『국수』, 창비, 2020. 

2) 존 어리, 『모빌리티』, 앨피, 2022.

3)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 민음사, 2017,.

4) 로저 타이슨, 윤동구 역,『비평이론의 모든 것』 , 앨피, 2019.

5)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이기숙 역, 『인간과 공간』, 에코리브르, 2011.

6) 피터 메리만 외 9인, 김태희 외 2인 역, 『모빌리티와 인문학』, 앨피, 2019.

7) 한병철, 김태환 역,『투명사회』, 문학과 지성사, 2015.

8) 강동호, 「죽음보다 낯선」, 김숨, 『노란개를 버리러』, 문학동네, 2011.

9) 김윤식, 김현, 『한국문학사』, 민음사, 2017.

10) 이병창, 「뿌리뽑힌 자들의 비명」, 김숨,『국수』, 창비, 2014.

11) 마이클 샌델, 함규진 역, 『공정하다는 착각』, 미래엔,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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