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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법원을 포섭하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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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누군가가 주위를 살피며 일식집의 밀실로 들어갔다.

“아이고, 선배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뭘, 바쁘다면서?”

“말도 마세요. 죽을 지경이에요. 검사로 일할 때가 훨씬 나았어요. 판사로 옮기면 좀 한가할 줄 알았는데, 기록 검토가 장난이 아니에요. 검사는 힘, 변호사는 돈, 오죽하면 판사는 과로사라고 하잖아요. 게다가 형사 2부 사건이던 국민참여재판이 제 재판부로 변경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심 판사는 엄살을 부렸다.

처음 이 사건은 무작위 전산 배당으로 형사 2부가 맡았지만, 윤철이 사시 동기인 지법원장을 움직여 심 판사 재판부로 재배당했다.

그 이유는 형사 2부 재판장이 그와 모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인의 소개로 만나 포섭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경우 후폭풍이 클 수 있다. 더구나 그는 상급자의 지시도 잘 따르지 않는 강직한 판사로 알려져 있었다.

윤철은 이 불법 배당 사실을 심 판사에게 숨겼다.

“태양에서 백도진의 변호를 맡았던데, 공판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실제로 해당 사건에서 재판부와 변호인이 만나면 안 되잖아요. 선배님이시니 특별히 나온 거예요. 헤헤헤.”

‘여우 같은 놈! 아니야, 미련한 곰보다는 이런 친구가 말이 잘 통하지.’

“심 판사, 재판 상황은 어떤가?”

“피고인이 강하게 결백을 주장하고, 그 상대가 도원그룹 총수의 아들이라 매스컴이 집중 조명을 해서 신경이 이만저만 쓰이네요. 말년에 이게 무슨 개고생인지 모르겠어요.”

“사실은…. 그 재판 건으로 보자고 한 거야.”

“네?”

“심 판사님의 생각은?”

“사건을 검토해봤는데, 피고인이 주장하는 무죄는 힘들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배심원 평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평결과 재판부의 판단이 다를 경우는 어찌 되나?”

윤철이 슬쩍 떠보았다.

“배심원 평결은 권고적 효력만 미칠 뿐, 법적 구속력은 없어요. 최종 판결은 재판장이 내리니까요. 미국처럼 평결이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자네의 판단이 절대적인 거군.”

“하지만 요즘 국민참여재판의 흐름은 배심원 평결을 거의 반영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게다가 평결과 다른 판결을 할 경우 그 이유를 판결문에 명시해야 하죠. 그러니 재판장으로서 배심원들과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어요.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한 취지와도 맞지 않으니까요.”

‘이제 미끼를 던져야겠군.’

윤철은 화제를 돌렸다.

“심 판사, 고향이 부산이라 했지? 변호사 개업하면 그쪽에서 하겠네?”

“네, 그곳에서 조금 일하다가 법복을 벗으려고 해요. 그래야 전관예우를 받지 않겠어요? 기러기 생활도 이제는 지겨워요.”

“맞아. 나이가 들면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게 최고지. 그러면 잘됐네!”

“뭐가요?”

“이번에 태양에서 부산지법 정문에 분소를 계획하고 있잖아. 심 판사가 그곳 대표로 취임하면 적격이네.”

“정, 정말이에요? 근데 겨우 지법 부장 이력으로 가능할까요?”

“후배님, 내가 누구야? 태양 대표로서 약속할게.”

“그럼 저야 감개무량하죠.”

뜻밖의 제안에 심 판사는 싱글벙글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무슨 문제가 있어요?”

“이 재판을 내 뜻대로 해줄 수는 없겠나?”

“어떤 의미인지?”

“공판을 검찰 측대로 하고 피고인을 유죄로 판결하는 걸세.”

“네? 하지만 배심원들이 어떻게 평결할지는….”

“심 판사 말대로 최종 판결은 재판장이 내리는 거잖아. 어차피 옷을 벗을 거, 판결문에 대충 주문을 적으면 되지. 그리고 자네도 피고인을 유죄라고 여기고 있잖아?”

“그야, 그렇지만….”

“부산 태양로펌 대표 자리, 그렇게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라네. 더구나 자네 경력으로는 어림도 없지.”

심 판사는 눈썹이 심하게 떨리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저, 대표 변호사 하겠습니다.”

“심 판사, 아니 부산 태양 대표님. 우리 서울과 부산에서 잘 지내봅시다. 건배!”

두 사람은 잔을 들어 서로 부딪쳤다. 윤철의 쓴 미소가 술잔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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