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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윤 Nov 22. 2024

4. 베고니아 꽃: 짝사랑, 당신을 사랑합니다

작은 희망

주말이 되었다. 지호는 유나의 "놀러 가지 않을래?"라는 메시지를 받은 후부터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치고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친구지만, 이제는 조금만 서로 가까이 있어도 온 신경이 유나에게 쏠렸다. 한동안 잊고 있던 설렘이 매 순간 마음속에서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침내 만나는 날, 지호는 유나를 기다리며 한참을 주변을 서성였다. 유나가 멀리서 보이자 그의 눈은 저절로 그녀에게 고정되었다. 조금 긴 머리카락을 고쳐 묶는 그녀의 손짓, 해맑게 웃으며 다가오는 표정이 어쩐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오늘 일찍 나왔네?” 유나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응… 그냥 그랬어.” 지호는 괜히 멋쩍게 웃었다. 실은 오래전부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티 내지 않으려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가볍게 어깨를 툭 친 그녀의 손길에 심장이 다시 두근거렸다.

그들은 시내를 걸으며 조용히 얘기를 나눴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대화였지만, 지호는 이상하게 유나의 작은 말투 하나하나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그의 시야가 그녀에게로 좁혀지고, 문득 그의 마음속에는 ‘그냥 친구 이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피어났다.

한참을 걷다가, 유나는 쇼윈도 앞에서 멈춰 섰다. 예쁘게 장식된 꽃다발들이 진열된 꽃집이었다.

“지호야, 이 꽃 예쁘지 않아?” 유나는 설레는 눈빛으로 꽃을 바라보며 지호에게 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베고니아가 한가득 피어 있었다.

지호는 유나의 질문에 잠시 멍하니 꽃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마음속으로 잠시 고민했지만, 문득 용기를 내고 말했다. “저 꽃… 베고니아야.”

유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베고니아? 뭔가 부드럽고 예쁜 느낌이다.”

지호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사실, 베고니아 꽃말이… ‘짝사랑’ 이야.”

유나는 그의 말에 놀란 듯 지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짜? 그런 꽃말이 있었구나. 근데 왜 하필 ‘짝사랑’이지?”

지호는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몰라, 꽃집에서 전에 본 적 있었어. 그래서 기억에 남았나 봐.”

유나는 그런 지호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 꽃이 참 예쁘다. ‘짝사랑’이란 꽃말인데도 뭔가 행복한 느낌이 드는 건 이상하네.”

지호는 살며시 숨을 고르며, 그 말을 유나가 조금 더 의미 있게 받아들였기를 바라며 속으로 다짐했다. ‘너한테 단순히 예쁘다고 말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의 마음은 또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산책을 마친 후, 유나는 지호를 향해 작은 카페로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유나는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지호를 향해 말했다.

“지호야,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오면서도 뭔가… 진짜 가까워진 기분이야. 너도 그렇게 느껴?”

지호는 잠시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랑 있으면 그냥 모든 게 좋아진다고 해야 하나…" 그 순간, 문득 그의 속마음이 새어 나온 것 같아 살짝 부끄러웠다.

유나는 그런 지호의 진지한 모습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괜히 기분이 좋다."

그녀의 눈빛에 지호는 속으로 다짐했다. ‘그녀가 내 곁에 이렇게 웃으며 있을 수 있다면, 난 더 많은 순간을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 이 작고 소중한 순간이 언젠가 특별한 기억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카페에서 나와 다시 길을 걷던 중, 유나가 무심코 말했다.

“지호야, 우리 다음 주 주말에 또 만날래?”

그 짧은 말 한마디에 지호의 가슴이 뛰었다. 예전 같으면 그저 친구의 제안으로 받아들였을 텐데, 이번에는 그 말이 그의 마음에 깊숙이 박혔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이제는 단순한 친구의 제안이 아니라는 걸 그는 느끼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냥 친구와의 만남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그런 만남이 아니라는 걸 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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