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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윤 Nov 29. 2024

5. 베고니아 꽃: 짝사랑,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정과 사랑 사이

유나와의 만남 이후, 지호는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 없었다. 그녀와의 모든 순간이 특별했고, 그녀의 말 한 마디, 웃음소리, 심지어 고개를 기울이는 작은 습관마저 지호의 세상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그날 밤, 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불을 끈 방 안은 어두웠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어지러웠다. 유나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뛰었고,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기분 좋은 전율이 찾아왔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고백했을 때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 두려웠다.

망설이던 지호는 결국 핸드폰을 들어 성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성윤이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야,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미안, 성윤아. 근데 나 진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성윤은 지호의 목소리에 담긴 진지함을 느꼈는지 자세를 고쳐 앉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 얘기해 봐."

지호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마음속의 고민이 점점 커지자 결국 말을 꺼냈다. "너라면…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하겠어? 아니면 그냥 친구로 남겠어?"

전화기 너머로 성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웃음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야, 너 유나 얘기하는 거잖아. 맞지?"

지호는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너 어떻게 알아?"

"봐봐, 네가 말 안 해도 다 보여. 요즘 네가 말끝마다 유나 얘기 끼워 넣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솔직히 고백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며?"

지호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다시 눕고 이불을 끌어올렸다. "그래… 근데 솔직히 고백했다가 친구 사이도 못 유지하면 어떡하냐고. 유나는 나한테 진짜 중요한 사람이야.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성윤은 한숨을 쉬며 진지하게 말했다. "지호야, 내가 하나 물어볼게. 네가 계속 이렇게 숨기면서 옆에 있는 게 정말 행복해? 아니면 진짜 너다운 선택을 하고 싶어? 물론, 리스크는 있겠지. 근데 네가 평생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니야."

지호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며 성윤의 말을 곱씹었다. 그의 말은 지호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냈다.



며칠 뒤, 지호는 도서관에서 유나와 마주했다. 둘은 나란히 앉아 책을 펼쳤지만, 지호는 집중할 수 없었다. 그녀의 옆모습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그의 고민을 간파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호야, 요즘 무슨 고민 있는 거 같아. 나한테 말 안 해도 돼. 근데 나는 네가 뭘 고민하든 잘 해결할 거라고 믿어."

유나의 다정한 말에 지호는 얼어붙은 듯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그때, 유나와 같은 반 친구인 민호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유나야, 이거 네가 좋아하는 라떼. 공부 열심히 해라."

민호는 자연스럽게 유나에게 커피를 건네며 살갑게 농담을 던졌다. "근데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나 못 따라올 거 아냐?"

유나는 민호의 말을 듣고 활짝 웃었다. "고마워! 근데 너야말로 나 따라오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할걸?"

지호는 그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묵묵히 책에 시선을 고정하려 애썼다. 그러나 귀는 그들의 농담을 놓치지 않았고, 시야 끝에는 두 사람의 웃는 얼굴이 계속 어른거렸다.

유나가 민호에게 밝게 웃는 모습이 왜 그렇게 신경 쓰이는지 지호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분명 아무 일도 아니라고 애써 자신을 다독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묵직한 아픔이 밀려왔다.

그날 밤, 지호는 방에 돌아와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메시지 알림을 발견했다.

“지호야, 친구가 추천해 준 곳이 있는데, 이번 주말에 같이 가볼래?”

지호는 미소를 짓다가도, 그녀의 메시지에 담긴 기대감에 설렜다.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이어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 근데 내 친구도 같이 가고 싶다는데 괜찮아?”

단순한 한 문장이었지만, 지호의 마음은 한순간에 복잡해졌다. 이제 그는 단순히 친구로 머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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