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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윤 Dec 06. 2024

6. 베고니아 꽃: 짝사랑, 당신을 사랑합니다

상처받은 마음

토요일 아침부터 지호는 내내 불안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유나가 보낸 메시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 근데 내 친구도 같이 가고 싶다는데 괜찮아?”

‘친구들과 함께라면 더 즐겁겠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쓰렸다. 사실 지호는 유나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유나는 이미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지호를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
“지호야, 여기야! 소개할게.”

유나는 옆에 있던 친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 민호, 그리고 이쪽은 소연이야. 오늘 우리랑 같이 놀기로 했어.”

지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유나에게 커피를 건네던 바로 그 친구였다.
민호는 밝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지호 맞지? 유나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같이 놀게 돼서 반갑다.”

민호의 태도는 친근했지만, 지호는 묘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민호와 유나는 처음 만난 사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둘은 이미 오래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놀이공원으로 들어간 뒤에도 민호와 유나는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민호가 유나의 머리 위에 놀이공원 모자를 씌워주며 장난을 걸자, 유나는 그저 환하게 웃었다. 지호는 그 웃음을 바라보며 마음이 조여 오는 듯했다.

‘괜찮아. 그냥 친구일 뿐이야,’ 지호는 스스로를 달래며 애써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

한적한 골목길에서, 유나와 민호는 여전히 서로 장난을 치며 웃고 있었다. 민호가 유나의 손에서 풍선을 가져가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유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올랐다.
“민호야, 그거 내 거야! 빨리 줘!”

민호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한 번 잡아봐! 키 작은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거야.”

유나는 민호의 팔을 툭 치며 투덜댔고, 민호는 한껏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장난을 보며 주변 친구들까지 웃음을 터뜨렸지만, 지호는 혼자 고요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지호의 손에는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온전히 유나에게 고정돼 있었다.
‘나도 저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그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무거워졌다. 유나의 웃음소리는 마치 먼 세계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너 괜찮아?”
조용히 다가온 소연의 목소리에 지호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어? 응, 괜찮아.”

하지만 소연은 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너, 아까부터 계속 저 둘만 보고 있잖아. 표정이 다 티 나거든.”

지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민호와 유나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의 웃음소리는 날카롭게 들려왔다.

“너 유나 좋아하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지호는 깜짝 놀라며 소연을 바라보았다.
“뭐? 아니야!” 그는 급히 부정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소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하지 마. 나 다 알아. 너 방금까지 유나만 보고 있었잖아. 티 안 나게 하려고 해도 이미 다 보여.”

지호는 시선을 피하며 손에 쥔 컵을 만지작거렸다. 소연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넌 계속 저렇게 멀리서 바라만 볼 거야?”

지호는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소연의 말이 그의 마음을 후벼 파고 들어갔다.
“그게... 쉽지 않으니까.”

소연은 잠시 지호를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말했다.
“참견일 수도 있지만, 네가 유나를 좋아한다면, 적어도 네 마음을 보여줄 용기를 가져봐. 그러지 않으면 넌 더 후회할 거야.”

놀이공원의 하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호는 한참 동안 핸드폰을 켜고 껐다. 소연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유나의 행복에 포함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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