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와 강아지 사이엔 생각보다 많은 공통점이 있다
백수로 살면서 가장 많이 함께한 존재는 나의 반려견 ‘봄’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 너무 닮은 거 아냐?’
1. 일정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같이 사는 울엄마가 기대하는 ‘사회적 일정’이 없다.
출근하고, 출장 가고, 가끔 회식이나 야근도 하는 그런 흐름.
나는 그런 것과 꽤 멀어져 있다. 내 강아지는 그런 것과 원래 멀었고.
걸핏하면 자고, 안 자도 곧잘 누워 있고, 누가 불러주기 전까진 움직일 이유가 없다.
나와 봄이는 가끔 서로를 부르듯 눈을 맞춘다.
별다른 목적도 없이, 그저 존재를 확인하는 눈짓이다.
2. 산책이 하루의 하이라이트다
산책이 하루 중 유일한 ‘사회적 외출’ 일 수도 있다.
동네 공원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 뭔가를 성취한 느낌마저 든다.
산책은 봄이와 내가 세상 냄새를 맡으며 사람 구경하는 시간이다.
에너지가 뿜뿜 하는 순간이다.
산책 후에는 함께 늘어진다.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같은 마음이다.
‘오늘도 뭔가를 하긴 했구나.’
3. 시간 감각이 모호하다
아침인지 낮인지, 평일인지 주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다.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봄이는 자기 발바닥을 핥는다.
가끔 둘 다 아무 이유 없이 멍 때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도 아무 일 없이 또 하루가 가는구나.’
이 요란하지 않은 생의 방식이 싫지는 않다.
4.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폭주한다
나는 밤 11시에 갑자기 방청소를 시작하고,
봄이는 새벽에 혼자 거실을 질주한다.
거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질주하는 봄이를 보고
개들은 다 밤에 저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동물병원 갔던 날 수의사에게 물으니
“강아지 원래 밤에 잘 자요. 돌아다니지 않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제야 알았다.
아, 봄이는 좀 특이한 애였구나.
다 같은 백수가 아니듯, 다 같은 강아지가 아니라는 걸
그때 새삼 깨달았다.
5.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다
‘아직도 집에 있어?’라는 시선에 움찔하는 나,
“애 물어요?”라는 말에 괜히 억울한 봄이.
존재가 가끔 민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서로를 쓰담쓰담해준다.
“그냥 그렇게 있어도 괜찮아.”
가끔은 그렇게도 말해준다.
그 말이 서로를 버티게 한다.
+ 예전 소개팅의 기억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어떤 종류의 돌봄 감각을 공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감정 때문일까. 예전에 강아지를 키운다는 남자와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통화할 때부터 신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애견 이름도 ‘봄’이라며, 저와 나의 만남이 봄이 아빠와 봄이 엄마의
운명적인 만남인 양 떠들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보니, 자기 강아지 이름이 ‘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나는 인터뷰 톤으로 물었다.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로 답했다.
어미 몰티즈가 새끼를 네 마리 낳아서
이름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 지어줬다고.
그런데 그중 세 마리가 어미젖도 떼기 전에 죽어버렸고,
누가 봄이고 누가 겨울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라,
그나마 살아남은 한 마리를 그냥 ‘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그가 생글거리며 말해서 재밌는 얘긴 줄 알았는데
듣고 나니 슬픈 얘기였다.
미안하지만, 그 남자와 나눈 얘기 중에 기억에 남은 건 이게 전부였다.
다시 ‘공통점’이란 본론으로 돌아가서
6. 사랑 받고, 돌봄 받고 싶다
봄이는 내 무기력한 하루를 지탱해 주고,
나는 봄이의 빈 배를 책임진다.
내가 봄이를 돌보는 것 같지만, 우린 서로를 돌본다.
사실… 이쯤 되면 누가 강아지고 누가 사람인지,
그 경계가 흐릿해진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우리 너무 닮은 거 아냐?’라는 물음에 저절로 답이 찾아졌다.
맞다, 우린 많이 닮았다.
봄이도 백수, 나도 백수.
다만, 나보다 봄이의 자존감이 좀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