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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Oct 21. 2024

14-2. 드디어

아내가 아프고 난 이후 여러 번 겪고 체감한 일이지만, 감사한 사람들은 다양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 아내의 직장 동료인 M은 나와 딸을 걱정해서 지난주부터 우리가 둘이 시간 보내는 데 도움 될 수 있도록 택배로 보드게임을 선물해 줬다. 지난주에는 치킨차차라는 보드게임을 선물로 받았는데, 딸과 하려면 많은 인내와 설명이 필요했었다. 재밌게 했다는 거짓 증언은 할 수 없어서 솔직한 카톡과 함께 M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드려요! 그런데 딸이랑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네요. 인내하며 새로운 걸 가르쳐 주는 건 원래 아내의 몫이었는데…. 그래도 다음에 다시 도전해 볼게요!"


이런 식으로 동정심을 유발했더니 M은 한술 더 떠 도블 미니언즈 버전까지 보내줬다. 새로운 게임을 받아내려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이런 내가 짠했는지 먼 곳에서도 지원 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아내가 오늘 일반 병실로 옮기는 걸 축하할 겸, 딸과 내가 버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보내준 선물일 것이다. 선물의 형태나 종류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내의 회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기대와 설렘이라는 단어가 공기 속에 녹아 있는 귀갓길이었다. 더 이상 내가 최전선의 보호자가 아니었고, 많은 일들은 이제 장모님에게 맡겨졌다. 내가 간병인으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장모님이 아내를 돌볼 수 있는 상황임에 감사했고, 덕분에 내가 마음 편히 딸을 돌볼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어 다행스러웠다. 내가 아내 곁으로 가는 것도 고려해 봤지만, 거동이 불편해 24시간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한 아내에게는 같은 여자이자 어렸을 때부터 보살펴준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훨씬 나을 거라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병원에 들어가게 되면, 딸은 부모의 그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 또한 피하고 싶었다.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장군처럼 엄마와 딸에게 아내를 일반 병실로 옮겨주고 왔노라며 떵떵거리면서 집에 들어갔다. 아내의 상태가 어제보다 크게 개선된 건 아니지만, 이제는 장모님에게 인계해 주고 왔으니 괜찮을 거라며 엄마와 나는 서로를 위안해 주고 저녁 식사를 할 채비를 했다. 아내의 일반 병실이 확정된 월요일부터 딸은 한마디 말을 주문처럼 외기 시작했다.


“엄마 보고 싶어~”


우연히 그저께부터 갑자기 아내가 보고 싶어진 것도 아닐 테고, 아내가 병원에 들어간 날부터 계속 그리웠을 텐데 딸은 이제야 그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내가 일반 병실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엄마를 만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 것일까. 처음으로 딸의 무심한 듯 던지는 한마디를 들었을 때, 순간 눈물이 핑 돌고 목이 메면서 동시에 복합적인 감정이 프리즘처럼 보였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참고 있었다는 게 불쌍하기도 하면서, 다른 친구들은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어야 했다는 게 안타까웠다. 결정적으로 엄마가 보고 싶다는 별것 아닌 말도 아빠를 배려한다고 참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철이 든 것 같아 대견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짠하기만 했다.


사실 딸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줄 방법이 없지 않았다. 세상이 좋아져서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방도가 있었다. 장모님 휴대폰으로 영상 통화를 걸면 딸이 아내의 얼굴은 볼 수 있다. 저녁 먹기 전에도, 딸아이 옆에 앉아서 저녁을 먹으면서도 나는 아무도 몰래 계속 고민했다. 과연 딸에게 아내의 현재 모습을 보여줘도 되는 것일까. 아내는 딸에게 정상과는 거리가 먼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당최 올바른 결론은 보이지 않았다.


저녁 식사 자리의 화두는 역시나 아내의 이야기였다. 이제는 괜찮아질 일만 남았다는 우리만의 어리석은 결론과 함께 가벼운 자축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와 함께 아내가 병실을 옮겼다는 말을 들은 딸은 역시나 언제 엄마를 만날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끈덕지게 물어보는 딸의 물음에 고민을 채 끝내지 않고는 나도 모르게 딸에게 제안해 버렸다.


“엄마랑 영상 통화 할래?”

“응!”


전화를 걸지 말지 이성적으로 고민하던 나의 고뇌가 가볍게 제쳐졌다. 딸에게 어떻게든 아내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는 나의 본능과 욕구가 가볍게 이성을 눌러버렸다. 심지어 얼른 저녁 먹고 엄마랑 영상 통화할 생각에 기대감이 가득 찬 딸의 모습을 보니 나의 이성을 눌러버린 본능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에 장모님에게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장모님의 목소리는 괜찮았다. 오히려 2주 만에 딸의 안녕을 확인해서 마음이 편안했는지 목소리에서 밝은 음성까지 엿볼 수 있었다.


“혹시 지금 영상 통화할 수 있을까요?”

“그래. 잠깐만~”


장모님은 황급히 음성통화를 영상 통화로 전환하려고 시도하고 있었고, 기대감에 찬 딸과 나는 식탁에 앉아서 아내의 모습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엄마는 설거지를 핑계로 자리를 황급히 뜨고 우리의 시야에서 멀찌감치 사라졌다. 어렵사리 영상 통화로 전환한 장모님은 이제 휴대폰 카메라에 아내를 담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화면의 대부분이 아내가 누워있는 침상을 비출 뿐, 아내의 모습은 어깨 정도만 겨우 보이고 있었다. 나는 곁눈질로 딸의 기분을 살폈다. 심란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던 딸은 의외로 매우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시야에는 대부분 딸의 뒤통수만 보였을 뿐인데도 한껏 승천한 광대가 강조되어 잔뜩 행복해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가 예쁜 누나를 만나면 광대가 올라가는 것과 동일한 안면근육 움직임을 보였기에 확실하게 딸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과 아내가 휴대폰 화면을 통해 얼굴을 마주했다. 당연히 둘이 눈물바다가 될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그들은 서로를 부를 수 있다는 것에 마냥 행복해 보였다. 딸도 보름 만에 ‘엄마!’라고 불러보고 아내도 비록 화면으로 보는 것이지만 딸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옆에서 가만히 휴대폰을 들어주면서 보고 있던 내가 딸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숨기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드디어 그들을 만나게 해 줬다는 성취감과 딸과 아내가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이 동반됐다. 아내의 발음은 어제보다 부쩍 좋아졌지만, 여전히 받침들을 발음하는 게 힘겨웠고 원하는 말들을 자신 있게 내뱉지 못했다. 그렇지만, 모녀지간에 그 정도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그동안 잘 지냈냐는 말보다 그저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최선을 다해서 딸과 대화를 이어 나가려 했지만, 장모님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 딸이 아내에게 질문하면 80% 정도는 장모님이 대신 답해주는 형식의 대화였다. 아내는 입을 움직이는 것이 여전히 어색했고, 간단한 예, 아니오 질문은 OK, 따봉 등의 희미한 손가락 움직임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힘겹지만 팔이라도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우리 엄마에게도 인사시켜 줬더니, 못 들은 척하던 엄마는 못 이기는 척 다가왔다. 하지만, 환자복을 입고 유동식 주입을 위해 코에 줄을 꽂고 있는 아내를 본 엄마는 이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모두가 잠시 어색해졌을 법도 한데, 그저 엄마를 만났다는 것에 마냥 행복했던 딸은 이런저런 질문들을 아내에게 연신 쏟아내고 있었다.


아내와 딸의 만남을 연장시켜 주고 싶었지만, 아내에게 장시간의 영상 통화는 무리일 것 같아서 주말에 함께 면회하러 가겠다는 당부와 함께 통화를 종료했다. 딸은 내가 울었는지 여부는 크게 관심 없는 것 같고, 그저 아내의 모습을 확인했다는 것이 무척 뿌듯하고 행복해 보였다. 딸도 그동안 억눌러왔던 불안함과 걱정들이 영상 통화 한 통에 대부분 해소된 것 같았다. 하품한 척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던 나는 의아했다. 원래 나는 아내와 딸이 영상 통화를 통해서 만나면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1983년 방영)>에서 당사자들이 서로의 가족을 확인하며 엉엉 우는 모습을 보일 거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연출됐다.


일전에 KAIST 뇌인지과학과 정재승 전임교수가 ‘집사부일체(SBS)’라는 예능에 출연한 장면 중 일부를 본 적이 있었다. 정재승 교수는 그 방송에서 우리가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화를 많이 내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뇌는 나에 대한 인지 영역(내측 전전두피질)과 타인의 인지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데, 우리가 측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지 영역은 비교적 나를 인지하는 영역과 가깝게 위치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실상 엄마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자식들이 엄마한테 유독 엄격하고 화를 낸다고 했다. 물론, 이는 감동을 주고자 하는 방송의 특성상 굳이 엄마만 언급한 것일 테고, 측근이라는 말에는 부모, 친구, 그리고 자식도 포함될 것이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딸을 나와 동일시했고, 딸의 아내에 대한 마음이 나와 똑같을 거라 여기는 오류를 범했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나는 종종 일상생활에서도 딸이 당연히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착각하는 실수를 한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하는 생각이나 걱정들을 당연히 딸도 함께하고 있을 거라 지레짐작하고는 한다. 딸과 나는 온전히 다른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동체라고 생각하니, 내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엄연히 자신만의 사고와 결정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내가 이미 다 해봤어!’라는 미명 하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딸이 내가 적절하다고 믿는 결론에 도달하도록 강제하거나 유도하려고 하는 경우가 생긴다.


나만의 교만에 빠져 잠시 눈이 멀었다. 어른이자 부모인 내가 보는 세상과 비교했을 때, 딸이 보는 세상은 훨씬 단순하고 깨끗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어른들과 비교했을 때, 세상에 대한 경험이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의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여 실패나 슬픔을 맛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딸의 경험 부족을 내가 채워줄 수는 없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체험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제시하는 해답은 지금 당장의 답답함들은 해소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이의 성장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는 실망, 상실,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서도 느끼는 바가 있고, 이를 통해 경험과 지혜를 쌓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런 감정을 소화하고 체득할 기회를 자기도 모르게 앗아가곤 한다. 어른들은 단지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들과 맞닥뜨리는 걸 보고 있는 것이 불편해서, 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자꾸만 아이에게 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의 감정이 아닌 아이의 감정에 조금 더 충실해야 한다. 부모는 절대로 아이와 함께 그라운드를 뛰는 동료 선수가 아니고, 사이드라인 밖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코칭스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자연스럽게 나와 딸을 일체화하면서 딸도 당연히 아내를 보면 어떤 이유에서든 눈물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걱정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우는 아이를 달래줘야 하는 상황은 나 혼자만의 상상으로 끝났다. 지금까지 어린이도 아닌 그저 아기로 보였던 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오히려 더 연약한 것은 딸이 당연히 절망하고 좌절할 거라 여겼던 내 쪽이었을지도 모른다.


휴대폰 화면 너머로라도 아내를 만나게 된 딸은 많은 것들이 해소된 것 같았다. 한결 표정도 밝아졌고, 아내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설명해 주듯이 구전으로만 듣다가 두 눈으로 아내의 상태를 확인하니 코어 근육이 단단해지듯 안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들처럼 엄마가 멀리 여행을 떠났다고 거짓말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있는 그대로 알려줬기 때문에 지금 일어나고 일들에 대해서 추가적인 시나리오를 작성할 필요가 없었다. 아내와 딸 둘이 실제로 만나서 살을 부대끼게 해주고 나면 내가 당면한 최우선적인 과제는 완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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