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딸이 다니기 힘들어하는 영어 학원을 마지막으로 등원하는 날이었다. 이번 주 초에 영어 학원에 전화해서 이번 달까지만 다니겠다는 최후통첩을 했다. 담당 선생님은 부랴부랴 전화해서 딸이 학원에서 잘하고 있고, 친구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는데 굳이 학원을 끊을 필요가 있냐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았지만, 사회적인 자아가 나의 진심을 꾹 눌러줘서 겨우 참을 수 있었다. 그저 우리와 학원이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점잖은 척하는 말로 학원 선생님의 감언이설을 사전에 차단하며 조심스럽게 전화를 마무리했다. 이왕 마음을 먹었으니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딸이 그동안 해보고 싶다고 했던 피아노도 다음 달부터 다니기로 했다. 이렇게 끔찍했던 3월의 기억을 깔끔하게 지워내기 위해 더욱더 상쾌한 4월의 출발을 할 만반의 채비를 했다.
반면, 우리 가족은 내일 아내와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 하자면, 딸이 아내와 만날 수 있는 조치를 하고 싶었다. 많은 병원들이 보호자들의 출입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G병원의 경우에는, 담당자에게 신고하고 교대하면서 ‘보호자 출입증’이라 일컫는 보호자 목걸이 명찰만 인계하면 되는 구조였다. 물론, 간병인 또는 보호자는 단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고, 당연히 보호자는 성인이여야 한다. 환자가 여러 명을 만나고 싶다면 휠체어를 타고 1층 로비에서 만나야 했는데, 아내는 휠체어를 탈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지금 아내는 걷는 것은 물론, 고개도 가눌 수 없었기에 억지로 휠체어에 태우면 머리가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끌려다니는 것을 감수해야 했기에 모든 면회는 아내의 병실에서만 가능했다.
앞선 정보를 종합해 보면 내일 딸은 아내와 만날 수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내와 딸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G병원 홈페이지의 면회 정책을 찬찬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보호자 출입증을 소지한 1인만 출입할 수 있고, 그마저도 12세 미만의 어린이는 전염성 질환에 감염될 우려가 있어 병실 출입이 금지된다고 버젓이 기재되어 있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예방을 위한 통제라고 하는 걸 보아하니 코로나 시국에 정립된 규칙 같았다. 약 1년 전에 엔데믹이 선언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규칙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한 느낌마저 들었다. 당연히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조금 융통성 있게 운영되면 좋았을 텐데.
세상의 융통성을 없애는 것은 결국 소수의 만행이다. 악화(bad money)가 양화(good money)를 구축한다고 했던가. 결국, 가치가 낮은 것이 가치가 높은 것을 몰아낸다는 뜻이다. 이는 금본위제도 하에서 제시된 경제학 이론으로 그레셤의 법칙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화폐 가치는 동일하더라도 자산 가치가 다른 화폐가 있으면 사람들이 자산 가치가 높은 화폐를 소장하고 자산 가치가 낮은 화폐만 사용했다고 한다. 결국, 세상에 유통되는 화폐는 자산 가치가 낮은 화폐뿐이다. 이 현상이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영국, 고대 로마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발생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종을 초월한 인간의 본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한 대형마트에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마트 구석에 쇼핑하러 온 고객들이 간단한 요기를 때울 수 있는 푸드코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박스에 담겨서 나오는 1인용 피자 스틱을 주문했다. 점원은 갓 구운 피자를 썰어야 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스몰토크의 나라인 미국에서 이렇게 대화를 트면 용건이 끝날 때까지 가벼운 대화를 계속하는 게 이상하지 않았기에, 나는 점원이 피자를 써는 것을 구경하면서 짧은 영어로 어렵사리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작은 크기의 개인 피자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크고 길쭉한 피자를 열 조각으로 쪼개서 세 조각씩 담아주는 게 내가 주문한 피자 스틱의 정체였다. 열 조각을 세 조각씩 나누고 나면 한 조각이 남았는데, 그 점원은 남은 아까운 한 조각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굳이 그렇게 자르고 한 조각을 버리는 게 아깝고 의아해서 물어봤다.
“어차피 한 조각을 버릴 거면 어떤 사람들한테는 네 조각 주면 안 되나요?”
“예전에 남은 한 조각까지 네 조각을 받은 손님이 나중에 와서 또 사 먹으면서 ‘전에는 네 조각 주더니 오늘은 왜 세 조각만 주나요?’라고 항의한 적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세 조각씩만 담고 있어요.”
선뜻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점원 입장에서는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월급 받으면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굳이 욕먹을 일을 피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잘라서 딱 떨어지게 나눌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진 않는 것 같았다. 네 조각 대신에 세 조각만 줘서 항의했다는 그 손님은 내가 운이 좋으면 네 조각을 먹을 기회마저 앗아가 버렸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피자 먹는 손님 세 명 중 한 명은 운 좋게 한 조각을 더 먹을 수 있는 건데 단 한 명의 민원인 때문에 모두가 공평하게 세 조각씩만 먹게 된 것이다. 나의 혼란함을 눈치챈 점원은 한 마디 더 보탰다.
“The bad make it bad for everyone.”
굳이 직역하자면, 질 나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뜻이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되는데, 그런 욕구를 남들에게 드러내면서 합리적인 척을 하면 결국 다른 사람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
병원들의 보수적인 운영 정책도 분명히 이런 경험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자기 가족이나 지인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남들에게도 똑같이 생각하길 요구하는 보호자들이 일반 상식을 초월하는 언행을 선보이면서, 많은 병원은 가능하면 보호자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가 출범되는 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봤다.
예전에 의료진을 괴롭힌 보호자들의 대가를 우리 가족이 치른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장모님에게 연락해서 딸이 아내를 만날 수 있는지 물어봐달라고 부탁했다.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간호사들에게 문의했더니 정책상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다고 했다고 전달받았다. 하다못해 목 받침대가 있는 휠체어라도 빌렸으면 아내를 거기에 앉혀서 로비에서 만나면 되는데, 그마저도 아내가 일반 휠체어를 써보겠다고 고집 피우는 바람에 불가능했다. 단순히 내가 원한다고 해서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딸이 아내를 만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내의 의식이라도 돌아오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원했는데, 막상 원하는 걸 얻고 나니 더 많은 것들을 갈망하게 되었다. 엄마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 전의 부모 마음만 그런 줄 알았는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출산하기 전에는 그저 아이가 건강하면 좋겠다는 마음만 가득하다가 막상 건강한 아이를 만나게 되니 밥도 잘 먹으면 좋겠고,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면 좋겠고, 이왕이면 남들보다 특출난 능력이 있어서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새로이 자리 잡았다. 사람의 욕심은 이처럼 끝이 없다. 그토록 원했던 중환자실 탈출을 이루고 나니 다른 욕망이 샘솟는데, 이룰 방도가 없어 보여서 답답함만 늘어갔다. 꽉 막힌 면회 정책에 대해서 답답해하다가 퇴근했는데, 막상 집에 가서 딸을 만나니 근거 없는 허풍을 떨었다.
“내일 엄마 만나러 가자. 문화 센터 끝나고 점심 먹고 가면 될 것 같아.”
이틀간의 영상 통화로 성에 차지 않았을 딸은 당연하다는 듯 그러자고 했다. 오늘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장모님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내가 아내의 휴대폰을 갖고 있었던 탓도 있지만, 어차피 아내는 휴대폰을 조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못했다. 어제, 그제 그랬던 것처럼 우리 가족의 통화를 하면서 장모님에게 병원의 꽉 막힌 면회 정책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랬더니 장모님이 오후에 간호사들과 이야기를 해봤더니 기대할 만한 구석이 있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1인실이라서 모든 병실을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고, 주말이라서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으니, 점심시간에 맞춰서 병원으로 와 보라고 했다. 장모님도 딸이 꼭 아내와 만났으면 하는 것 같았다.
영상 통화를 종료하고 딸에게 저녁 먹기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무책임하게 다시 던졌다.
“내일 발레 끝나고, 얼른 점심 먹고 엄마 보러 가자.”
“응!”
병원의 보수적인 면회 정책을 알 리 없는 딸은 내일 아내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히고 있는데, 그제야 내가 괜히 허세만 부린 게 아닐지 뒤늦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만 안은 채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