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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Oct 31. 2024

17-1. 이기심

많은 것들이 예정된 하루였다. 아침에는 딸의 문화센터 수업과 늦은 오후에는 Q네, R네와 함께 백화점 문화센터의 영어 요리 수업 체험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일정은 그 사이에 있는 아내의 병원 면회였다. 아침에 엄마가 들러서 딸과 나의 긴 하루를 도와주러 왔다. 머리 묶는 게 어설픈 나로 인해 손녀딸이 못난 머리 스타일로 오늘 하루를 보낼까 봐 걱정된 엄마가 딸의 머리를 묶어 주는 사이, 나는 오늘 필요한 짐들을 싸기 시작했다.


다양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수납공간이 넉넉한 까만 백팩에 많은 짐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발레 수업이 끝나고 딸이 갈아입을 옷, 영어 요리 수업할 때 필요한 앞치마, 요리하면서 옷을 더럽히게 될 경우를 대비한 여벌 옷 외에도 딸이 식사할 때 필요한 수저, 물티슈, 물병까지 넣었더니 백팩이 내 마음의 부담과 같이 한없이 빵빵해졌다. 오늘은 아내의 발병 이후에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V네와 Q네, R네를 만나야 했는데 그들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무리 없이 설명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리고 어젯밤부터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또 다른 걱정은 과연 딸이 아내와 재회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한다고 병원 사정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꽉 찬 가방과 마음속 부담감과 함께 딸과 함께 길을 나섰다. 다행히도 딸은 나의 곤란함과 다르게 오늘 많은 친구들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아내와 만난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걱정인 것 같았다. 오늘 일정을 무사히 치를 수 있는지 걱정되다 보니 괜스레 내 옷차림까지도 비루해 보였다. 편한 의상을 추구하다 보니 후드티, 트레이닝복 바지에 아내를 G병원에 입원시킬 때 신었던 가장 편한 스케쳐스 운동화를 착용했더니 홀아비 냄새마저 풍기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첫 번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문화센터로 향했다. V와 딸은 성격이 비슷해서 유치원 3년간 5살 때 딱 한 번 같은 반이었는데도 지금까지 쭉 친하게 지내고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엄마들끼리도 서로 마음이 잘 맞았는지 유치원에서 특별활동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모래놀이와 토요일에 참석하는 문화센터, 매달 초에 숲 체험 활동까지 함께하고 있다. 원래라면 엄마들끼리 만나서 V와 딸이 문화센터 발레 수업을 듣는 동안 둘이 커피를 마셨을 텐데, 오늘은 아내가 없었다. 꽤 오랫동안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에 내게서 아내가 일반 병실로 옮긴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V엄마는 오늘은 이례적으로 V아빠와 함께 나왔다. 평소에도 V아빠와 교류가 많았지만, 이상하리만큼 문화센터와 숲 체험은 엄마들의 전유물이었다. V엄마, 아빠와 함께 1층의 카페에서 간단하게 커피를 한잔하면서 오랜만에 담화를 나누기로 했다. 화제는 당연히 아내의 건강이었다. 오히려 다른 주제를 다루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격렬했던 지난 보름간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덤덤하지만, 자세히 쏟아냈다. 그들이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들을 미리 해준다는 쓸데없는 배려에서 비롯된 과도한 정보 공유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내가 고비를 넘기고 일반 병실로 옮겼기 때문에 부담 없이 얘기할 수 있었다. V엄마와 아빠는 내게 각자의 방법으로 위로를 건넸다. V엄마는 간신히 눈물을 참았는가 하면, V아빠는 본인의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우리 가족원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심어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나는 아내가 입원한 이후에 원망이라는 감정을 최대한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불편한 감정을 외면하기 힘들었지만, 굳이 먼저 찾아가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혼자 절망에 잠식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해야만 했다. 나와 나 자신 간의 싸움이 벌어질 경우 피해자는 결국 나와 우리 가족뿐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남들과 우리 가족의 상황을 공유하면 위로받는 것도 나였다. 내가 이야기하고 남들이 열심히 들어주면서 얻는 감정의 해소도 있었지만, 이런 일이 남들에게도 무수히 일어난다는 것이 오히려 더욱더 크게 위로됐다. 남들에게 굳이 얘기하지 않았을 뿐, 많은 이들도 유사한 경험을 더러 했었다. 그저 우리 가족이 지금 당장 겪고 있는 것뿐이었다.


발레 수업이 끝난 후에 V와 딸은 깔깔거리며 재기발랄하게 우리에게 뛰어왔다. 딸이 여태껏 웃음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했다. 재잘대던 아이들은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외쳤다. 딸과 둘이 다니면서 가장 곤란한 상황이 바로 둘 중 한 명이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화장실을 가게 되면 딸은 자기도 여자라며 남자 화장실을 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완강히 거부했는데, 이럴 때 여러모로 마음이 다급해져서 굉장히 곤란했다. 거꾸로의 상황도 다른 이유지만 비슷한 수준으로 난감했다. 남자 화장실을 데리고 들어가기에는 다른 화장실 사용자들에게 조금 눈치 보이고, 그렇다고 내가 여자 화장실에 따라 들어가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했다. 가족 화장실이 있으면 모든 걱정이 해소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기지를 발휘해야 했다.


고맙게도 곤란해하고 있던 나를 대신해서 V엄마가 자연스럽게 V와 딸을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고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저 고맙다고 하며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밖에 서서 V아빠와 이야기하다가 딸의 마스크를 챙기지 않은 것도 알게 됐다. 밖에서는 마스크를 끼지 않아도 되었지만, 병원에서는 환자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바로 옆에 있는 약국에서 하나 구매해도 되는데, V아빠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홍색 마스크가 차에 있으니 가져다주겠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들은 감사하게도 내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든 우리 가족을 도와주려고 하고 있었다.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내 눈치까지 보고 있는 게 느껴져서 남몰래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V엄마와 아빠는 딸에게 아내를 만나서 좋겠다며, 잘 만나고 오라는 인사와 함께 우리와 헤어졌다. 재빠르게 점심을 해결하고 G병원으로 향하기 위해 딸과 써브웨이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우리의 결정을 알려주려고 장모님에게 전화했더니, 오히려 점심 먹지 말고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장모님이 아침에 간호사들을 찔러봤더니 명확하게 와도 된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눈감아 줄 수도 있다는 희망을 봤던 모양이었다. 딸과 나는 작전을 변경하고 황급히 준비해서 병원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언젠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당장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딸은 나와 차 뒷좌석에서 가방에 쑤셔 넣었던 의상으로 환복한 이후에 병원으로 출발했다.


딸이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운전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이 얼마나 기다려왔던 시간인가. 아내가 딸을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딸이 아내를 만날 수도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까지 왔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장모님에게 전화했더니, 장모님은 이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장모님은 손녀딸을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과 간호사들이 딸과 나를 병실로 들여다 보낼 것 같은 안도감에 마스크 뒤로 환한 표정을 숨기며 우리를 맞이했다. 지하 식당가에서 나와 딸의 점심거리를 간단하게 사기로 했다. 나는 포장이 가능한 샌드위치를 구매했고, 여기까지 와서 싸우기 싫어서 입 짧은 딸에게 먹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말고 사라고 했다. 그랬더니 딸은 야속하게 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간호사들에게 줄 커피를 사려고 간 카페에서 조그마한 빵 두 개를 골랐다. 아빠 1은 눈치 없이 이런 상황에서도 딸이 식사다운 식사를 하기를 원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이 있다며 아빠 2가 설득했다. 아빠 1도 아빠 2가 옳다고 생각했는지,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면서 딸의 빵을 무리 없이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셋은 간호사들에게 건넬 커피를 들고 수요일에 아내를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길 때 탔던 그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 자리에 딸과 함께 왔다고 생각하니 묘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다양한 감정의 부침들을 거쳐서 다시금 원래대로 돌아가는 과정일까. 원칙적으로 우리의 일반 병실 면회가 불가능하다 보니,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부터 나 혼자 위축되기 시작했다. 나의 불안함을 누군가 꿰뚫어 보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러기에 손에 잔뜩 들려 있는 커피잔들이 이미 나의 최종 목적을 전광판처럼 알려주는 것 같아 최대한 숨고 싶었다. 휠체어에 앉아 귀엽다고 해주는 처음 보는 할머니의 칭찬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대답도 유야무야 하는 것을 보아하니 딸도 꽤 긴장하는 것 같았다.


아내의 병실이 있는 꼭대기 층에 무사히 내렸다. 내가 즐겨하는 플레이스테이션 RPG 게임에 등장하는 최종 관문의 바로 앞 단계까지 온 것 같은 긴장감으로 장모님을 따라 출입문에 서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하지만, 이런 나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딸은 기대감에 부풀어서 문이 열리자마자 1등으로 놀이공원에 뛰어 들어가는 아이처럼 아내가 있는 병실을 찾아 나섰다. 장모님이 환희에 가득 찬 얼굴을 한 딸과 함께 병실로 들어간 사이에 나는 간호사들에게 커피가 가득 든 캐리어를 카운터 너머로 은밀하게 넘겨줬다. 장모님이 오전부터 언질을 준 덕분인지 한 명의 간호사가 올 것이 왔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옅은 미소만 띠고 감사하다는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다. 비로소 아내, 딸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드디어 하나가 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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