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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꺼지지 않는 불꽃

다섯 번째 이야기  10-05 Meet

by 운담 유영준 Mar 26. 2025




일주일쯤 지났을 때, 백발의 홍 회장이 다시 나타났다.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는 부동산 김 집사가 홍 회장의 비서처럼 딱 달라붙어 있었다. 홍 회장은 매장에 들러 김 집사가 이미 들은 이야기를 약간은 느린 속도로 이북 말투를 써가며 일방적으로 늘어놓고 가버렸다. 그의 말은 부드럽게 들렸지만, 그 말속에는 수많은 가시와 머리칼이 쭈뼛 서게 하는 강압이 들어 있었다. 


아내인 영숙과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지만, 결론은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올린 임대료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건물주에게 사정을 해서라도 임대료를 낮추든가, 아니면 떼를 써서라도 일정 기간 유예를 받든가 해야 하는데, 홍 회장의 얼굴과 말투로는 비빌 언덕은 고사하고 숨 쉴 틈조차 없어 보였다. 성질대로라면 소송을 통해 법에 호소하는 방법이 있지만 법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만약 법을 운운한다면 일 년 이내에 사업을 접고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상가 사장님들의 움직임을 보고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봄이 왜이리 더딘가?_산수유가 봄을 데리고 온다봄이 왜이리 더딘가?_산수유가 봄을 데리고 온다

  

  

오후가 되자 먼저 매장 문을 열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치킨집 송 사장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2층 요리학원 신 원장과 세탁소 강 사장이 함께 들어왔다. 

“야, 이건 뭐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 아닙니까? 뭐, 이 도시에서 제일가는 부자라더니!”

눈알을 싹 굴려 가며 바람을 잡듯이 송 사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옆에 휴대폰 매장 민 사장을 만났는데 그 집이야 본사에서 월세를 대주기 때문에 걱정할 게 없드만요.”

말을 잠시 멈추고선 다시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원장님네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하며 요리학원 신 원장 얼굴을 쳐다보았다.

신 원장은 단발머리를 한 손으로 쓱 올리곤 약간 난처한 듯 얼굴을 구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애 아빠하고 상의해 봤는데 세를 이렇게 올려선 운영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이에요. 학원을 옮겨야 하나. 번거롭기는 하지만 크게 손가는 게 없어서 계속 고민 중이네요.”

“강 사장님은?”

송 사장이 강 사장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며 말끝을 흐렸다.

“우리야 뭐, 동네 장사고 아파트 끼고 하는 거라, 여기 아니면 다른 데로 가도 되는데, 나는 못 올려주고, 못 나가요.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이판사판 공사판에서 세상 밑바닥까지 가본 사람입니다. 마음잡고 조용히 살려는 사람을 이렇게 대하면 안 되지. 내가 뭐 그렇게 잘못한 게 얼마나 있다고. 그리고 이제 저 그만 부르세요. 상가에 힘쓸 일이 필요하면 말하세요. 근데 그거 아니면 조용히 내버려두세요. 이번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성질나면 그냥 확 불 질러….”

말을 마친 강 사장이 양팔을 걷어붙이자 두 마리 푸른 용의 문신이 얼굴을 내보이며 함께한 사람들을 확인하듯 살짝 보였다가 이내 사라졌고 얼굴을 붉힌 강 사장이 이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에이 참, 나 원, 강 사장만 보면 마음이 그러네. 왠지 조폭 냄새를 팍팍 풍긴단 말이야.”

다들 뚜렷한 결론 없이 각자 대응하는 모습에 기운이 빠지고 서운했던지. 송 사장의 눈이 초점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바삐 눈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 정도였다.

“답이 없네요. 답이….”신 원장이 얕은 한숨을 내쉬다, 무엇이 생각났는지 말을 이어갔다. 

“근데 부동산 김 집사님은 이럴 때 꼭 안 계시더라. 부동산을 운영하시니 우리한테 도움이 될 텐데.”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 송 사장이 말을 이어갔다.

“말도 꺼내지 마세요.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 했다고. 아마 우리가 한 말들 모두 홍 회장에게 고대로 갖다 바칠걸요. 저번 홍 회장 왔을 때 내가 지켜봤거든. 뭘 얼마나 편의를 봐 주기로 했길래. 완전히 살살이가 따로 없다니깐. 믿지 마세요. 믿지 마. 뭐든 다 해결해 줄 것처럼 말하더니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 격이라고 생각해요. 일전에 찾아가 상의했더니 뭐 죄다 안 된다는 이유뿐이야. 내가 봐선 첩자가 따로 없다니깐요. 믿은 내가 바보 천치지. 천치야. 에이 씨.”

말을 맺은 송 사장이 분하다는 듯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정말 부동산 김 집사가 우리를 배신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 매주 수요일에 연재합니다. 관심과 애정에 감사합니다. 운담 유영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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